제42집: 복귀의 한 1971년 02월 19일, 한국 서대문교회 Page #47 Search Speeches

생명을 얻기 위해서" 생명을 빼-기" 자리- 가야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는 생명을 빼앗기는 자리에 가야 합니다. 예수님이 전부터 죽을 것을 생각했겠어요? 예수님은 서른 세 살 때까지만 살다가 죽는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죽게 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설명할 필요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죽을 것을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변화산상에서 엘리아와 모세가 나타나 예수님이 죽을 것을 얘기하니 청천벽력이었습니다. 모든 환경이 죽지 않을 수 없도록 딱 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겟세마네 등산에 가서“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원대로 하옵소서(마 26 :39)”라고 기도했습니다. 이 얼마나 처량합니까? 이게 자식으로서 할 기도입니까?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피하게 하시옵소서. 할 수만 있으면 죽지 않게…' 얼마나 급했으면 이렇게 기도했겠어요? 이것을 볼 때, 죽겠다고 생각한 예수님이었어요? 예수님은 죽는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 안 했다는 것입니다. 돌변지사였습니다.

그렇게 기도해 놓고 미안하니까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한 것입니다. 그것도 한번만 했으면 될 텐데 세번씩이나 했으니 얼마나 처량합니까? 뼛골이 조여 들어가는 판국에 직면 했습니다. 행여나 소식이 있을까 하고 두 번 기도 드려도 소식이 없고, 세번까지 기도 드리고 소식이 있을까 기다렸지만 깜깜 무소식이었습니다. 세번까지 해봤으면 다 알수있지 또 해볼필요가 있어요? 그래서 할수없이 십자가의 길을 택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명 하나를 희생함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기독교가 세계적으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때는 예수님을 한 젊은이로밖에 보지 않았습니다. 목수의 아들을 누가 알아주었겠습니까? 형편없는 사람으로 보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잡혀가실 때 베드로는 야간도주해 버렸지요? 예수님의 어머니 아버지까지로 예수님이 달린 십자가에 가까이 가 보지 못하고 멀리서 바라보았습니다. 그때 로마제국의 권세가 얼마나 당당했는지 알아요? 그렇게 죽은 예수님이 오늘날 세계를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이 위대한 사실인 것입니다. 그렇게라도 죽지 않았으면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악이 무엇이냐 하면, 좋은 것을 빼앗아 가고 나쁜 것을 주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진정한 공무원이라면 국민의 나쁜 것을 빼앗아 가고 좋은 것을 주고 싶어할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 반면 국민의 좋은 것을 빼앗아 가고 나쁜 것을 주면 악입니다. 그렇게 하면 그 나라는 망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여러분을 등쳐 먹고 편안하게 지낸 다면 그것은 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