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6집: 뜻 앞에 선 통일교회의 어제와 오늘 1983년 04월 24일, 한국 본부교회 Page #223 Search Speeches

영과 육을 하나 만" 수 있" 힘은 사'밖- -어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뜻 앞에 선 통일교회에서 주장하는 이론이 도대체 뭐냐? 종말시대의 모든 사망의 요건을 엎고 나갈 수 있는 요소와 그것을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녀 가지고 내적인 기독교문화, 혹은 종교의 문화권과, 외적인 유물세계의 문화권을 흡수 소화해 가지고 새로이 완전한 세계사적인 뜻을 품은 하나의 인간으로서 남자 여자로서 외적인 세계의 지배권을 초월할 수 있는 사람이요, 지금까지의 내적인 종교권을 초월할 수 있는 새로운 미래의 인간상이 뜻 앞에 필요하다, 이런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통일교회는 현재의 기독교문화권 앞에, 민주세계와 공산세계 앞에 흡수되느냐, 흡수하느냐 하는 이 싸움의 노정을 가야 되는 것이 불가피한 노정입니다. 만일 기독교문화권이 통일교회를 그냥 그대로 받아들였더라면 기독교는 비약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이와 같은 자유세계의 비참한 역사노정을 그려 놓지 않았을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하나님 뜻 가운데에 나왔다면, 기독교문화권을 연결시켜 가지고 종말세계에서 비약할 수 있는 뜻의 완성 종교로서 하나님이 세우셨다면, 이 교회를 기독교문화권에서 환영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종교문화권이라는 것은 뜻의 완성을 향해 나가는 데 있어서 반드시 끝날에는 청산짓고 넘어가야 돼요. 사탄의 세력권과 하나님의 세력권, 내적인 세력권과 외적 세력권이 지금 갈라져 있습니다. 외적 세력권은 딴 방향으로 가고, 내적 세력권도 딴 방향으로 갑니다. 종교와 이 세계역사는 반대 방향으로 거쳐왔습니다. 그래서 종교와 세상과는 타협할 수 없습니다. 세상은 물질을 대신한 것이요, 종교는 정신을 대신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도 밝히 말하듯이 하나님과 물질을 같이 섬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분립역사입니다. 이렇게 나와요.

그러면 언제나 그렇게 나갈 것이냐? 끝날에 와 가지고는 둘이 갈라졌던 것이 접촉해야 됩니다. 접촉해야 됩니다. 접촉하는 데는 무엇을 중심삼고 접촉하느냐? 본래 창조원칙에 의하면 하나님을 중심삼고, 사람의 내적인 정신과 외적인 몸이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무엇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되게 돼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이론적인 그 무엇을 가지고도 하나 만들 수 없다 이거예요. 영과 육을 하나 만들 수 있는 그 힘이라는 것은 오로지 하나밖에 없나니, 그건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시대에 수많은 종교는 하나님의 사랑을 내적으로 해 가지고…. 지금까지 전부 다 종교 형태가 다르고, 방향이 다르고 그렇지만 전부 거기에 포괄되는 거예요. 이렇게 볼 때, 무엇 갖고 이 종말시대에 하나로 만드느냐? 종교의 가는 길 세상의 가는 길이 찾아 만날 수 있는 때가 왔는데, 어느 것이 먼저냐 하는 선후 문제가 중요한 문제라구요. 공산주의자들은 '유물론이 먼저다' 하고, 종교세계에서는 '유심론이 먼저다' 하고 있습니다. 정신이 먼저다, 물질이 먼저다 하는 싸움을 하고 있어요.

그러면 종교들이 찾아 나가야 할 것은 뭐냐? 무엇을 중심삼고 하나만들어야 되느냐? 하나되는 데는 무엇을 중심삼고 하나되느냐? 그것은 지식도 아니요, 돈도 아니요, 권력도 아닙니다. 이것들은 오늘날 세계인간들이 필요로 하는, 이 세계의 생활권 내에 절대 필요로 하는 인간들의 욕구에 대한 충족의 중요한 요건들입니다.

오늘날 세계 사람들이 사는데, 생활하는데 무엇을 중심삼고 사느냐? 공부하는 목적이 어디 있느냐? 인간 완성이 아닙니다. 생활적 방편으로 활용되는 물질적 조건의 풍요성을 확장시키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서 지식을 추구합니다. 권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의 치부를 하는, 자기 스스로의 경제적 기반을 자유화할 수 있는 무대를 형성하기 위한 방편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지식 가지고도 안 되고, 권력 가지고도 안 되고, 돈 가지고도 안 된다 이거예요. 그러면 무엇 가지고 하나 만드느냐? 어떠한 수단 방법 가지고 하나될 수 없습니다. 거 하나되는 데는 강제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강제로 하나되는 것이 아니라구요. 통일의 개념 가운데는 강제로 하나되는 것이 아니라구요. 순리적으로 돼야 돼요. 순리라는 것은 질서를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질서를 제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는 반드시…. 질서 가운데 중요한 것이 뭐냐? 질서 가운데 중요한 것은 주체적 개념, 상대적 개념입니다. 주체 개념이 시작된 다음에는 좌우 개념, 좌우 개념이 시작된 다음에는 전후 개념, 그다음에는 상하 개념이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전후, 좌우, 상하를 연결할 수 있는 주체적 내용의 핵이 뭐냐? 위나 아래나, 전후, 좌우 전체가 좋아할 수 있는 핵입니다. 그 중심이라는 것은 전부가 좋아할 수 있는 핵이어야 될 텐데 그게 도대체 뭐냐 할 때, 그것은 인간들이 그려오는, 인간을 중심삼은 사랑이라는 거예요.

신에 일치될 수 있는, 신의 뜻에 일치될 수 있는, 신의 뜻을 중심삼은 것인데, 과정적 뜻이 아니라 완성적 뜻의 중심의 핵과 일치될 수 있는 그게 무엇이냐? 그게 하나님의 전능성이냐? 전능성 가지고도 안 된다구요. 전권이냐? 아니다 이거예요. 그러면 무소부재한 소성이냐? 그것도 아닙니다. 그게 무엇이 돼야 되느냐? 하나님 자신도 살아 가지고 생활하는, 물론 영계가 있어서 이런 시공의 관계를 초월한 자리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살아가는 데는 무엇을 중심삼고 살아가느냐? 무한한 힘이 있다, 무소부재하다, 전권적인 권한이 있다, 그게 아닙니다. 하나님도 사랑을 중심삼고 살아간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살아가는 데는 시작도 그렇고, 과정도 그렇고, 영원히 그럴 것입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하나님이 참된 사랑의 대상을 갖추게 되면 기쁘기 때문입니다.

권력이 아무리 있다 하더라도 사랑을 중심삼고 주고받을 수 있는 대상이 없게 될 때는 그 권력이 있어서 뭘해요? 하나님은 권력도 필요 없는 것이요, 창조의 능력도 필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오로지 필요한 것이 뭐냐? 그 모든 것을 다 버리더라도 절대적으로 한 가지를 소유할 수 있어야만 되는데, 그것은 절대적 가치적인 것이요,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좋아할 수 있는 것이요, 절대적으로 귀하게 여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것이 뭐냐? 심중(心中)이 있으면 그 심중의 센터, 심중의 중심이 될 수 있는, 그것을 꿰어서 움직일 수 있는 축이 될 수 있는, 심중 전체가 축이 돼 가지고 움직일 수 있는 그것이 무엇이겠느냐? 하나님의 본질적 사랑일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있어서 참사랑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