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집: 심정과 공적 생활 1970년 08월 11일, 한국 부산 동명장여관 Page #129 Search Speeches

하나님의 심정과 뜻을 '심삼고 나가라

선생님은 지금까지 나 자신을 중심삼아 가지고 나간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하나님을 중심삼고 나왔던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과 심정적인 일치를 이루려고 했습니다. 심정적으로 어긋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심정이 일치되면 자유가 있지만 그것이 어긋나면 대번에 어색해지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양심적인 사람입니다. 나 자신이 부끄러울 때에는 부끄러워할 줄 압니다. 그런 것에는 예민합니다. 내가 협회장이라든가, 누구를 만나서 떡 보게 되면 그 사람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자기가 하는 말에 도취되어 할 말 못 할 말을 막 하는 걸 보게 됩니다. 선생님은 강단에 서서 말씀할 때 말을 빨리 하지만 잘못했으면 반드시 지적하고 넘어갑니다. 그런데 언젠가 협회장이 말하는 것을 보니 아담을 노아로 말하고 노아를 아담으로 말하면서도 그것을 잘 모르고 넘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협회장이 단순한 생활을 했기 때문입니다. 단순하면서도 일방적인 생활을 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생활을 거쳐왔기 때문에 그렇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어떤 한 가지 문제가 있으면 거기에 대한 연상이 아주 빠릅니다. 그런 면에서는 선생님이 천재적인 소질을 갖고 있어요. 또 응용하는 데 있어서도 상당히 빠릅니다. 어떤 것 하나를 보면 그것을 동서남북 사방으로 딱 가려(분별해) 가지고 어떤 위치의 것이냐 하는 것을 판정합니다. 사고방식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영적 세계에 있어서 분별해 나오는 싸움의 역사(役事)가 그렇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서 뭐가 어떻고 저떻고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오직 천도가 문제입니다. 하늘땅의 운세가 어떻게 되어 나가느냐, 복귀섭리를 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의 터전이 어떻게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되지 그런 것은 문제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요는 내가 누구를 중심 삼고 나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뜻을 중심삼고 나간다면 그 뜻은 누구의 뜻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 뜻이 하나님으로부터 선생님을 통해서 나왔으면 선생님이 수고한 역사적인 모든 것을 존중시하고 거기에 일치될 수 있는 자아를 발견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 자아를 발견했다 해도 자기를 세워서는 안 됩니다. 그런 자아를 발견했다면 자기를 세우려 하지 않더라도 때가 되면 환경적으로 전부다 세워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가 뭐 어떻고 어떻고 하면서 남을 평하는 것은 틀린 것입니다. 도의 세계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사탄이 하는 놀음입니다.

사탄이 해와에게 '하나님이 네게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하더냐'고 했던 것처럼 조건을 걸고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다 저렇다 불평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문제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절대로 오래 못 갑니다.

나는 박재봉 목사라든가, 이호빈 목사라든가 하는 사람들의 배후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의 배후에 대해서 잘 알고 있지만, 지금까지 내입으로 그 사람들의 결점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말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들에게도 따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과 그들을 따르는 사람들과는 인연이 있어서 만난 것입니다. 하나님이 백만큼의 인연을 중심삼고 만나게 해주었는데 그것을 오십쯤의 인연으로 끌어내리면 끌어내린 사람이 책임져야 된다는 거예요. 일단 그 밭에 심어 놓은 것은 그 밭에서 거두어야 되는 것입니다. 만약 그 밭에 심어 놓은 후에 주인이 거두지 않는다면 문제가 다르지만, 일단 그 밭에 심은 것은 그 밭에서 거두어져야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