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7집: 하나님과 나 1967년 04월 10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61 Search Speeches

원리강의의 목적

내가 그런 관점에서 지금 지구장이라든가 지역장들을 가만히 보면 말이예요, 내가 지금 서울에서 가만히 전국을 생각하면 그런 관점에서 다 이탈되었다고 봅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므로 본연의 여러분의 위치를 회복해야 된다구요.

여러분들이 강의할 때는 반드시 하나님 앞에 하나님이 사랑하는 뜻이니, 선생님이 이 뜻을 위해서 나온 기준이 있고 우리는 그 뜻을 위해야 하는 자녀의 입장에 있으니 하늘을 붙들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결론지을 때나 기도할 때는 반드시 여러분 혼자 기도하지 말라는 거예요. 무엇을 위해서 이 놀음 하느냐? 무엇을 목적으로? 하늘의 인격을 대신 소생시켜 주고, 그 인격을 본래대로 재창조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여러분이 심정 기준이 없어 가지고 어떻게 되나요?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강의하는 끝에는 여러분이 무엇을 강의하느냐? 반드시 현재의 선생님의 입장을 한마디 해야 됩니다. 그걸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의 과거와 현재의 입장이 어떻다는 것을 언제나 한마디 해서 결론을 내려야 된다구요. 그래서 하늘 앞에 심정적인 시작도 거기서부터, 결말도 거기서부터…. 하늘과 여러분이 하나되는 입장에서 움직여야 합니다. 그렇게 정성들여 가지고 해보라구요, 결과가 어떻게 움직이나. 알겠나요? 「예」

여러분들의 입장은 직접적 입장이 아닙니다. 간접적 입장입니다. 그러므로 간접적 입장은 직접적 입장을 언제나 망각해선 안 된다 이거예요. 알겠지요? 「예」 그 입장을 취하지 않고는 심정문제의 일치점을 가져오지 못합니다. (녹음이 잠시 끊김)

순회할 때도 그것은 내 자신이 가는 게 아니예요. 자기가 가는 것이 아니라구요. 전부 다 선생님 대신 가야 된다구요. 그리고 보는 것도…. 이런 강을 건너가면 '아, 하나님은 어떻게 생각할까?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할까?' 하면 그 시간이 얼마나 은혜의 시간이겠어요?

더우기나 석양의 황혼 길을 걷든가 달밤을 걷든가 이럴 때는…. 그 심정이 귀한 거예요. 기도를 하는 것도, 옛날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이 감람산 뒷골목을 헤매면서 기도하던 그 사정을 가지고 하는 겁니다. 전부 다 그런 역사를 반영시켜 가지고, 그 시대, 그 당시의 그 사람의 입장을 대신하여 '하늘이 그런 마음을 가지고 가면 그 걸음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라고 생각하면 얼마나 은혜가 내리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혼자 이렇게 걷고, 혼자 이렇게 명상하고, 혼자 이렇게 기도하고, 혼자 말씀을 보는 그 시간이 얼마나 깊은 은사의 시간이겠느냐? 지금 지역장들이 그런 생활을 못 하고 있다는 거예요. 공인의 입장에 서지 못했다구요. 공인의 입장에 서지 못했다 이거예요. 그렇잖아요?

생각이 크면 클수록 과거를 불러일으켜서 현재의 감정과 더불어…. 태양을 보면 옛날에 태양을 예수님도 봤고, 성인현철도 다 봤을 텐데 어떻게 봤을 것이냐? 물이면 물도 마찬가지고 공기도 마찬가지입니다. 풍부한 시적 경지의 감정을 일으킬 수 있고 역사적인 시대의 인물이지만 현실적인 내용을 이 시대에 재현시켜 가지고 나와 더불어 직접적으로 심정적인 면에서 감정이 통할 수 있는 생활환경을 갖출 수 있어야 돼요.

그런 데에 있어서 자기들이 흥미를 느껴야 됩니다. 그런 경지에 들어가 가 가지고 하늘 앞에 호소하고, 하늘의 사연을 통고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자연히 연결되는 거예요. 알겠지요? 「예」 자, 그러니 이 심정의 일치, 문제는 그거예요. 그것을 다시 한 번 재현시키자 이거예요.

내가 이런 말을 왜 하느냐 하면 여러분이 이제 내일부터는 원리강의를 다시 생각해야 됩니다. 그런 관점에서 지금과 달리 김 아무개면 김 아무개 입장에 서지 말라 이겁니다. 앞으로 원리강의를 하더라도…. 그 원리강의는 말씀만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전하고, 하나님의 실체를 전하고, 하나님의 실체이상, 선생님이 지금까지 탕감복귀해 나온 역사적인 사실을 전해야 된다구요. 그것이 직접 내가 상속받을 수 있는 문제이니만큼 심각하다 이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