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집: 최후의 한때와 나 1970년 03월 12일, 한국 통일산업 (구리시 수택리) Page #295 Search Speeches

아담가정과 노아가정을 '심한 복귀섭리

역사는 지금까지 6천년 동안 흘러 나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 복귀역사 과정에서 수많은 곡절이 있어 왔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벨을 중심삼고 아담이 실수한 것을 복귀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셨지만, 가인이 아벨을 죽이는 그 순간 하나님의 심정은 어떠하셨겠는가? 암담했다는 것입니다.

아담이 타락한 것만도 슬픈 일인데 희망을 가지고 잃어버린 자녀의 기준을 찾기 위해 소망의 터를 닦고 키워 복귀의 한때를 바라본 하나님 앞에서 가인이 아벨을 살해하게 되니 2차의 복귀의 소망마저 실패하게 되었고, 가인은 하나님의 내심에 거듭 못자국을 남기게 됐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인간 조상이 하나님 앞에 슬픔의 기원자인 것만도 복통한 사실인데, 아벨이 처참한 형상으로 살해당함으로 말미암아 또 다시 하나님께 못자국을 가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가중된 원한을 품고 나오셨습니다.

노아를 중심삼고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120년 동안 수난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는 환경적으로 그 어떤 사람도 자기를 따라올 수 없는 외로운 자리에 내몰린 것입니다. 평범한 사람이든 특정한 사람이든 타락한 인간이라면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경지까지 몰린 것입니다.

노아는 그렇게 몰리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왜? 그는 둘이 있는 자리에 가서는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단 혼자만의 자리에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 들어가지 않고는 복귀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아벨도 단 혼자만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대했고, 노아도 단 혼자만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대했던 것입니다. 아담 해와 두 사람을 창조하셨지만 섭리는 남자를 중심삼고 하는 것입니다.

복귀역사를 중심삼고 볼 때, 남자가 이것을 찾아야 할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복귀해 나오는 과정에 있어서 노아가 찾아가는 자리도 역시 하나님과 노아 자신 둘만이 대할 수 있는 자리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를 어떻게 끌고 나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있어서 노아는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지시하시는 목표와 일체될 수 있는 인연을 세워 하나의 절대적인 관계를 가져야 합니다. 노아는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 신앙심을 갖고 하나님이 현현된 실체와 같은 입장에서 주체인 하나님과 일치될 수 있는 탕감조건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120년 동안 절대적인 신앙 기준을 세워 주기를 바라고 노아를 몰아냈던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됩니다. 하루도 아니요 10년도 아닌 120년 동안의 기간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그 기간 동안 하나님이 노아에게 찾아오시어 참고 극복하라고 언제나 말씀하셨던 것도 아닙니다. 한번 믿었으면 그 절개를 영원히 지킬 줄 알아야 했고, 한번 믿었으면 아무리 환경이 요동을 하더라도 그 환경을 넘어 갈 수 있는 자신이 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노아는 120년 기간을 지난 후에 홍수심판을 당했습니다. 노아는 여기서부터 하나님의 새로운 소원성취가 있을 것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노아를 중심삼고 볼 때, 노아 개인만으로는 복귀되지 않는 것입니다. 아담이 복귀되기 위해서는 그의 아들인 아벨이 필요했듯이, 노아의 아들이 아버지를 복귀할 인연을 중심삼고 아버지와 일치될 수 있는 기준을 세우지 않고는 타락한 부자의 인연을 복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본연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자세를 갖추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식이 구원섭리의 출발을 행하는 것입니다. 본래는 아버지가 해야 되는데 타락했기 때문에 자식이 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아를 중심삼은 뜻에 있어서 부자가 일치될 수 있는 기준을 세우도록 하기 위해 그로 하여금 모든 수난의 역경을 거치게 하여 40일 홍수심판을 했던 것입니다. 심판 이후의 이 땅 위에는 아버지와 그의 가족만 있고 자기들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 누구도 없는 환경이었습니다. 이렇게 자기 아버지인 노아의 말을 들을 수 있었던 환경인데도 불구하고, 뜻하지 않게 함이 불신하는 한때를 가져옴으로 말미암아 제 2차적인 복귀도상에 있어서 또다시 하나님께 슬픔을 가중시켜 드리게 되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