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9집: 미래를 위하여 1978년 09월 10일, 영국 런던교회 Page #117 Search Speeches

현실을 부정하고도 희망을 가질 수 있" 사람이 "람직한 사람

이러한 실정에서 우리가 발전할 수 있는 미래, 희망적인 내일을 기약한다는 사실은 지극히 어려운 말입니다. 우리 인간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인간이 갖고 있는 것을 세계에 다 이렇게 만들어 왔다면 나하고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는 거예요. 관계없게끔 하지 않을 수 없는 단계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사람에 대해서. 사람은 이래야 된다 하는 이미지를 내세울 수 없다구요.

그러면 이러한 실정에서 어떠한 사람이 과연 바람직한 사람이냐? 이러한 외적인 모든 것을 전부 부정하고도 나는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사람. 자기 혼자 자신을 가질 수 있는 사람입니다. 문화생활의 혜택이 없어도 나는 살 수 있다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건 왜 그러냐 하면, 인간이 만들어 놓은 것이 인간 앞에 좋지 못하니 이걸 부정할 수 있다는 거예요. 부정하는 데는 아무런 미련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생각해 보라구요. 그래 가지고 어떻게 살겠느냐고 할 때, 어떠한 고생이 있더라도 나는 살아갈 수 있다는 사람…. 그러면 그 사람을 누가 보장해 주느냐 이거예요. 자기 스스로 암만 그렇다고 했댔자 그걸 보장시킬 수 있는 환경적 여건을 드러내고 나타낼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자, 이래 가지고 사는 것이, 그러한 보장을 할 수 있는 나 자신이 돼 가지고 이렇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보다 낫다, 낫다 할 수 있는 이런 자신을 가질 수 있다면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은 문화세계에서 전부 다 후퇴해 가지고도 자신을 가지라는 거예요. 후퇴했지만 점핑해 가지고 저 앞쪽까지 갈 수도 있다는 거예요. 그 말이 무슨 말이냐? 마음대로 버릴 수 있고 마음대로 찾을 수 있다는 거예요.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이거예요. 그 말은 또 무슨 말이냐 하면, 지금 이것 붙들고 살겠다는 사람보다 낫다는 거예요. 이것을 붙들고 죽지 않겠다고 바둥바둥하는 사람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자, 그럴 수 있는 운동이 무슨 운동이냐? 그럴 수 있는 운동을 한다는 것은 평상적으로는 불가능하다구요. 역사적으로 그런 놀음을 한 흔적이 있느냐? 그런 운동을 제시한 것이 무엇이냐? 그런 놀음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무슨 과학도 아니고 철학도 아니고 전부 다 아니예요. 종교만이 그런 놀음을 해왔더라 이거예요. 종교만이 그런 놀음을 해왔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된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