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5집: 중요한 사항 1972년 11월 19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75 Search Speeches

주체와 대상간의 심정적 일치점을 어떻게 찾느냐

예를 들면 예수님을 중심삼고 볼 때 예수님의 세 제자, 세 제자를 최후의 희망의 기점으로 지상세계에 남기고 가느냐 혹은 잃어버리고 가느냐 하는 최후의 순간에 있어서, 예수님의 심정과 그 제자들의 심정이 일치점을 보았더라면 그들은 어디까지나 예수의 가는 길을 도울 수 있는 자리에 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기에서 심정의 방향이 엇갈렸고, 여기에서 심정의 위치가 차이를 가져왔다는 사실이 비참한 결과를 가져온 것임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와 예수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고, 유대교와 예수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체와 대상간의 심정적 일치점을 어떻게 찾느냐 하는 문제가 복귀섭리에 있어서 중요한 사항으로 남아 있는 것을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부모가 슬퍼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만일 그 옆에서 웃고 있는 자식이 있다면 그것은 불효인 것입니다. 그것이 왜 불효냐? 영원히 하나 될래야 하나될 수 없는 자리에 떨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무엇인지 모르게 부모가 슬퍼하게 될 때에, 그 자식들도 슬퍼하지 않을 수 없는 자연적인 인연을 지니게 될 때는 그것은 같은 길을 가는 것입니다. 부모의 성공은 자식의 성공이요, 부모의 슬픔은 자식의 슬픔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같이 가게 되면 그 결과의 자리를 같은 입장에서 차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 이것은 두말할 나위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가능하게 하느냐 하는 그 방법에 들어가 볼 때에, 이것은 중요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내 마음을 저 사람 마음 앞에 옮겨 주기 위해서는 자기를 생각해 가지고는 절대 불가능합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자기를 생각해 가지고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창조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의 입장에 서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생각한다는 것은 상대물이 없는 자리에 서기 때문에, 대상이 없는 것을 인정하는 자리에 서기 때문에, 목적을 성사할 수 있는 환경을 못 갖는 자리에 서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절대 심정이 일치될 수 없습니다. 심정일치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섭리의 뜻을 추진시켜 나오시는 하나님께서는 수많은 종교를 동원해 가지고 그 종교의 가르침을 통해서‘자기만을 생각하지 말고, 자기를 높이지 말고, 교만하지 말고, 온유겸손하고 희생하라' 는 말을 제시했습니다. 왜 그런 것을 제시했느냐? 만일에 자기를 생각하게 되면 환경을 무시하게 됩니다. 즉, 상대가 없는, 상대를 부인하는 자리에 서는 것이기 때문에, 이 천리(千里)의 모든 한(恨)의 귀결점, 귀일점이 여기서 생겨나기 때문에, 상대적 요건으로 말미암아 생겨나기 때문에, 이것을 복귀하는 데는 자기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절대적 요인이 상대이기 때문에 자기를 중심삼은 생각을 갖는 그 자리에서는 복귀섭리를 추진 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창조하지 않은 자리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상대가 없는 자리에 서기 때문에, 상대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을 인정하는 자리가 되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뜻을 이를 수 있는, 창조이상을 이를 수 있는 상대적 요건이 전부 다 해소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재창조의 역사를 따라가지고 복귀섭리를 해 나오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자리에 서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창조하시던 것과 같이 창조하라는 것입니다. 창조는 자기 소모입니다. 창조 하는 데는 그것을 놓고 낙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복귀섭리의 길을 걸어감으로 말미암아 최후에 찾아지는 것은 뭐냐 하면 제일 문제가 되는 심정적 일치점이 이 길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완성해 가지고 기뻐할 수 있는 심정의 일치점, 나의 기쁨이 그의 기쁨이요, 그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될 수 있는 그 자리가 나타나게 되면 그 자리는 슬픈 자리가 아닙니다. 사랑을 중심삼은 자리입니다. 열의 희생을 했더라도 백의 가치로 느낄 수 있는 결과가 오는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비로소 올라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평면이 아니라 반드시 산과 같이 그런 높은 곳을 이루어 놓은 것이기 때문에, 그 높은 곳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가 되게 될 때 거기에는 그 무엇보다 행복한 것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행복이라는 것은 지금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되겠습니다. 행복은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환경을 수습해야만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환경을 수습하기 위해서는 재창조의 법도 과정을 거쳐가야 되기 때문에 자기를 생각하고서는 절대 안 된다 이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