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0집: 자녀의 날과 재생 1980년 11월 08일, 한국 본부교회 Page #54 Search Speeches

가정교회를 완성하- 새로운 아담문" 창건의 주인이 돼야

자, 그런 놀음을 왜 해야 되느냐? 왜 해야 되느냐? 뜻 때문에 하는 겁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이 자녀의 날과 뭐라구요? 거듭남. 이런 제목이라구요. 우리 타락인이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 역사시대를 이렇게 거쳐 나오는 거예요. 이렇게 거쳐 가지고, 피어린 예수 시대를 거치고 오늘날 레버런 문 시대를 거쳐 가지고 육십 평생을 걸어 놓고 역사적인 한스러운 모든 고비와 맞부딪쳐 가지고 그걸 격파해서 넘어가야 할자리에서 싸워 나오는 길에 섰다는 것을 알고 여러분들도 그 길에 도움이 되고 힘이 되고 그 길을 이어받기 위해서 싸워 나가야 돼요.

자, 이런 길을 지금까지 일생 동안 가다 보니 무엇이 됐느냐? 이제는 통일교회 반대의 검은 구름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아시겠어요?「예」세계 어디 가든지, 120개 국가 어디 가든지 통일교회 반대의 함성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사라지게 되었다구요. 그건 뭐냐? 동삼삭의 추운 겨울 절기는 지나가고 봄날이 찾아온다 이거예요. 봄날이 찾아와요. 봄날이 찾아오니, 봄에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데 갈아입을 옷이 있어요? 갈아입을 옷이 있어요? 봄날이 됐는데 겨울 옷을 입을 거요, 봄 옷을 입을 거요?「봄 옷이요」 봄 옷 있어요?「있어요」 하나님이 만들어 준 봄옷이 있어요? 하늘나라가 제정한 봄 옷을 입어야 한다면, 봄 옷이 있어요? 봄 옷을 입는 데는 남자는 남자식 봄 옷을 입어야 되고, 여자는 여자식 봄 옷을 입어야 한다구요. 스커트가 되겠나, 뭐 에이커트가 되겠나? 그건 아무래도 좋겠다구요. 봄 옷으로 갈아입어야 된다구요. 봄 옷을 갈아입기 위해서는 봄 옷의 문명이 있어야 된다구요. 그렇게된다구요.

그래서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 대해서 가정교회 완성을 주장하고 나오는 거예요. 알겠어요? 가정교회 완성은 뭐냐? 새로운 문화창건을 주도하는, 아담문화를 재편성할 수 있는 주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아담의 후손이 되지요? 그러면 무엇이 중심이냐 이거예요. 심정적 기준이 중심입니다. 그러면 그 심정은 무슨 심정이냐?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바라볼 때, 마음 속에 '저는 타락했다. 복귀된 아들이 아니다'라는 그런 타락했다는 관념을 느끼지 않고 '내 사랑하는 아들아' 이럴 수 있는 자리에 올라가야 돼요. 아시겠어요? '저놈의 자식 저거 통일교회 들어가 가지고 지지리 못나게 저 모양으로 다니고, 요리 빠지고 저리 빠지고 미꾸라지 새끼, 뱀장어 새끼 모양으로 ,' 하는 말은 듣지 말아야지요.

복귀의 한의 심정에 묻혀 있는 하나님이 화창한 봄날을 향해서 스스로 시를 읖을 수 있고 그 음성 가운데 사랑하는 아들을 보면서 '오냐, 내아들아' 할 수 있고, 거기에 감정이 없어야 된다구요. 만일에 복귀역사의 과정에 한을 품고 온 아들이라 생각할 때는 옛날 아담보다도 더 훌륭한 찬사의 조건이 있어야 돼요. '민족이 배반하는 자리에서도 너는 나를 생각했고 세계가 반대하는 자리에서도 나를 생각했고 그 이상의 어려움이 있더라도 나를 위해서 눈물짓고 나를 위해서 붉은 정성, 일편단심을 가지고 정도를 가는 주인이 되겠다고 몸부림치면서 절개를 지켜 나온 아들이기 때문에 아담에게 줄 복의 천배 만배를 주더라도 미치지 못한다'고 찬사할 수 있는 아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아들이 되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이 한 일이 놀라와서 타락세계에서 복귀된 아들이라는 감정을 잊어버릴 수 있는 아들이 돼야 합니다. 그 두종류 중의 한 아들이 돼야 됩니다.

이렇게 볼 때, 복귀의 심정을 거치지 않고 본래 순리적인 입장에서 타락하지 않은 완성한 아담으로서 사랑받을 수 있는, 아무 지장 없이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아들의 자리에 올라갈 수 있겠느냐? 그건 절대 불가능하다 이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니 그 이상, 타락하지 않은 아담보다도 더 칭찬받을 수 있는 내용을 지닐 수 있는 역사적 곡절에 있어서 패자가 아닌 승자의 기록을 남겨야 된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아담가정에서 그렇고 노아가정에서 그렇고 아브라함 가정, 모세, 예수시대를 거쳐 지금까지의 시대에 있어서 심정적 기준이 그래야 된다 이거예요. 여러분 그래요?

여러분들은 양자밖에 못 되는 거예요, 양자. 알겠어요? 양자라는 것은 아들이 없을 때 필요하지 아들이 있는데도 양자가 필요해요? 성경에도 그렇지 않아요? 양자의 이름으로 '아바 아버지여' 라고 부른 거예요. 아바 아버지는 더듬으면서 주저하면서 부른 말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