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0집: 신앙과 나 1972년 08월 18일, 한국 청평수련소 Page #274 Search Speeches

보다 큰 상대를 찬'하" 것이 신앙

자기가 실력이 없다고 걱정하는 사람 많지요? 그래 가지고 '아이고, 내가 대학을 나왔으면 좋겠다' 이러기도 하는데 그런 생각을 빼 버리라는 거예요. 대학을 나온 사람보다 상대세계를 더 찬양하기 위해 노력을 하고 그렇게 행동하게 되면 대학을 나온 사람이 나에게 무릎을 꿇을 것입니다. 그 사람이 내가 찬양하는 상대권, 내가 찬양하는 상대적 환경보다 작은 자리를 찬양해 가지고 찬양받는 사람이 된다 하더라도, 내가 그보다 큰 자리, 높은 자리에서 찬양받게 된다면 그는 내 수하에 들어와 무릎을 꿇을 것입니다. 이것은 논리적으로 타당한 것입니다. 그렇겠어요, 안 그렇겠어요?

'애국자는 전부 다 학박사다' 하는 논법이 국가의 전통으로 결정되어 있다면 모르지만, 유관순이 학박사예요? 안중근이 학박사예요? 그 시대에 있어서 그들은 미욱하고, 바보 천치 같고, 곰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러나 그들이 사랑하는 데 있어서 누구를 사랑했느냐? 우리나라를 상대로 사랑했습니다. 사랑하는 데는 얼마만큼 사랑했느냐? 미치는 단계를 넘어 가지고 죽을 때까지 사랑한 것입니다. 상대 세계를 무한히 찬양한 사람은 아무것도 없는 맨손을 들고 있어도 세계는 그를 환영할 것이고 그와 더불어 죽음의 자리까지 동참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렇게 상대를 찬양하려고 하는 세계가 창조이상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사람은 혼자 죽더라도 이 세계가 그의 친구가 되어 주는 것입니다. 어떤 인간도 동정하지 않는 외로운 자리에 혼자 있다 하더라도 그 이념권은 그와 더불어 같이 있는 것입니다. 그 인연을 설정한 분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을 찬양하고 가는 곳에는 언제나 그 주체가 나와 같이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은 혼자 죽더라도 천국 안 갈래야 안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자기의 본고향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이라는 것은 누구를 찬양하는 것이냐? 자기를 찬양하는 거예요? 상대를 찬양하는 그것이 신앙이라구요. 결국은 그 논리에 귀결되는 것입니다. 보다 큰 상대를 찬양하는 데에서 신앙의 길이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인 하나님이요, 유일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최대의 가치를 지닌 그런 상대로서, 영원히 영원히 그를 찬양하기 위한 생활이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상대를 찬양할 수 있는 그 길은 어디에서 생기느냐? 관계를 맺는 데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내 말과 내 정신과 내 마음과 내 행동이 가는 곳에서 인연이 맺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만나 가지고 말을 해야 됩니다. 길이라도 같이 가 봐야 됩니다. 한 자리에 앉아서 밥이라도 같이 먹어 봐야 인연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하나님과, 상대와 나와의 인연은 거기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인연을 갖지 못한 사람은 관계를 맺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자가 남자의 인연을 따라왔기 때문에, 남자가 여자의 인연을 따라왔기 때문에, 여자와 남자가 그런 인연을 가졌기 때문에 합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자는 어떠한 존재냐? 여자가 '아 나는 여자만을 위해 있을 거다' 이럴지 모르지만, 여자는 남자를 위해서 태어난 것입니다. 남자도 마찬가지로 남자를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여자를 위해서 태어난 것입니다. 그건 뭐냐 하면 자기의 위치를 부정하는 데에서 존재가치가 출현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자는 왜 태어났느냐? 자기를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남자를 위해 태어난 것입니다. 남자는 왜 태어났느냐? 남자도 자기를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여자를 위해 태어난 것입니다. 남자가 아무리 덩치가 크고 아무리 배짱이 있다 하더라도 나중에 상대를 필요로 하여 여자를 사랑을 하게 된다면 그 여자가 아무리 작더라도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나 살려 주소' 하고 빌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본래부터 생겨나기를 자기를 위해서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그 눈이 누구를 위해서 생겨났느냐? '누구를 위하다니, 나를 위해 생겨났지' 이래요? 눈이 자기를 위해서 생겨났어요? 상대적인 세계를 위해서 생겨난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나를 위해서 생겨난 것 같지만 상대세계가 있기 때문에 결국은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귀는 왜 생겨났느냐? 상대가 있기 때문에 그 상대의 말을 듣기 위해 생겨난 것입니다. 자기의 말이야 뭐 그까짓 귀 없이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코는 왜 생겨났느냐? 코가 코 때문에 생겨났어요? 상대와 인연을 맺기 위해서 생겨난 것입니다. 입은 왜 있느냐? 말을 해 가지고 모든 의사 소통을 함으로써 그 사상이라든가, 혹은 마음이라든가 인격적인 기준을 서로가 통하게 하기 위해서 생겨난 것입니다. 전부 다 그래요. 손은 뭣 때문에 생겨났느냐? 일 때문에 생겨 났습니다. 나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지만 결국 그것은 역사를 개척하기 위해서 일하는 것입니다. 전부 다 남을 위해서 태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나를 위해서 태어났다고 주장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