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3집: 조국통일에서 통일조국으로 1988년 02월 14일, 한국 본부교회 Page #127 Search Speeches

"몸은 마음을 "라, 마음은 '심을 "라 살아야"

그럼 남자 여자가 언제 마음이 맞겠어요? 남자 여자라는 그 동물 자체가 재미있습니다. 여자들은 뭐 조그마해서 뺑 하고 돌리면 팽이 돌듯이 돌아요. 남자가 왕왕왕 이러면 여자는 뺑 하고 외로 돌아요. 남자가 한 바퀴 돌면 여자는 열 바퀴 돌려고 그러거든요. (웃음) 작지만 말이예요, 큰 놈보다도…. 자, 그것이 언제 하나될 거예요? 그게 문제입니다. 그러면 세상의 처음에, 역사 이래에 인간 조상인 남자라는 동물과 여자라는 동물이 태어나 가지고 여자라는 동물이 주장하며 가라사대 `나에게 통일이라는 것은 필요 없다' 이랬다면 사고 중에 그런 사고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 눈도 초점이 맞아야 됩니다. 안 그래요? 통일을 거치지 않고는 완전한 의식을 갖지 못합니다. 숨도 전부 다 여기 들어가서…. 공기도 그렇잖아요? 감기 걸릴 때 보면 한 곳은 찬 공기, 한 곳은 뜨거운 공기가 들어오게 되면 비정상적이 되어 코가 찡찡 메이잖아요? 초점이 맞아야 돼요. 들어오는 공기를 전부 다 같은 온도로 평준화시켜 가지고 폐로 들여보내야 됩니다. 조금만 차이가 있게 돼도 재채기를 캑 합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눈도 그래요. 우리가 무엇을 쥐기 위해서도 초점을 맞추어야 됩니다. 이렇게는 암만 해도 안 된다구요. 암만 힘을 써도 안 됩니다. 무엇을 세워 놓더라도 초점을 맞춰야 되는 거예요. 우리가 걷는 것도 전부 다 반대되는 초점을 맞춰 놓고 흐느적흐느적 걷습니다.

그런데 여자라는 동물의 최초 조상이 가라사대 `나에게는 통일이 있을 수 없다' 하고 말했다면, 그놈의 여자는 망해야 됩니다. 사람은 이중구조로 돼 있습니다. 마음이라는 것이 있고, 몸이라는 것이 있어요. 그렇지요? 그거 틀림없다구요. 마음은 종적입니다. 마음은 서 있으니까 종적이예요. 마음이 바르다는 것은 종적이라는 거예요. 몸뚱이는 횡적입니다. 그것이 하나돼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마음을 따라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몸뚱이는 무엇을 따라 살아야 되느냐? `몸뚱이가 무엇을 따라 살아? 몸뚱이를 따라 살지' 이럴 수 없습니다. 몸뚱이는 마음을 따라서 살아야 됩니다. 그러면 마음은 무엇을 따라 살아야 되느냐? `마음도 마음 따라 살지' 이게 아니예요.

어린 애기 마음, 그다음에는 청춘의 마음, 장년의 마음, 또 그다음에는 할머니 마음이 있는데 이게 어디를 따라 사느냐 이거예요. 젊은 사람들하고 늙은 사람은 달라요. 그래서 세대격차니 뭐니 해 가지고 야단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몸은 마음을 따라 살아야 하고, 마음은 무엇을 따라 살아야 돼요? 한번 물어 봅시다. `대한민국 국민은 법을 따라 살아야지' 하면 거 기분 좋아요? 법은 말이예요, 주권자에 따라서 옛날 시대와 지금 시대가 얼마나 다릅니까? 왔다갔다하고 변하는 것입니다. 변화 발전하는 거예요. 변화 발전한다는 것은 자기 자리가 없다 이거예요.

여러분, 참새새끼도 말이예요. 날아가는 참새가 짹짹짹 하고 아주 암수 둘이 재잘거리는데, 그들에게 집이 없다 할 때 그렇게 재잘거릴 수 있는 마음이 생길까요? 참새새끼도 그럴 거예요. 자기 근거지가 있어 가지고 나갈 수 있고 들어갈 수 있고 놀 수 있는 환경이 지속적으로 언제나 자기에게 제공될 수 있기 때문에 그래도 살려고 하고 좋아하려고 하지, 그렇지 못하면 얼마나 근심거리예요. 참새새끼도 그런데 사람은 뭐 말할 것도 없지요.

사람은 뭐라고 그래요? 사람새끼인가요, 사람님인가요? 사람님이라고 합시다. 근거도 없이 사는 떠돌이 마음하고 살겠다 하는 몸뚱이라고 할 때 그 몸뚱이가 불행할소냐, 행복할소냐? 떠돌이 마음하고 사는 그 몸뚱이가 행복하겠어요, 불행하겠어요? 「불행합니다」 행복할지도 모르지요. `문선생이 불행하다고 하지만 아니야. 나는 행복해!' 하고 누가 천년을 큰소리하더라도 전체가 그걸 인정 안 하려고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마음이 제멋대로 한다면, 역사시대를 거쳐온 우리 조상들이 바른 마음을 갖고 살라고 했겠어요? `너 양심에 가책이 안 돼?' 하고 묻지요? 그게 벌써 법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마음은 종적 기준에 선다는 것입니다.

나무라는 것은 어떤 종류를 막론하고 땅에 뿌리를 박았으면 곧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무가 생존하는 원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무가 꼬부라졌다 하는 말은 무슨 말이냐? 그건 곧아야 할 나무의 위치에서 어긋나 가지고 그릇된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말하는 거라구요. 벌써 찌그러졌다, 구부러졌다 하는 말은 개념적으로 바른 기준을 중심삼고 결론짓는 말입니다.

그러면 여자의 양심이 바르다 할 때, 그 여자의 바른 양심이 남자의 바른 양심하고 같을 수 있어요? 같을 수 있느냐 말이예요? 「예」 그것을 어떻게 믿어요? 바르다고 할 수 있는 공증된 사실을 누가 제시한다고 해서, 오늘날 문선생이 여기서 제시한다고 해서 그것을 인정할 수 있어요?

자, 그러면 사람은 그렇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있다면 하나님도 마음이 있을까요? 몸이 있을까요? 하나님을 봤어요, 못 봤어요? 봤어요, 못 봤어요? 「못 봤습니다」 못 봤지만 없어서는 안 된다 이겁니다. 그런 말이 어디 있어요? 못 봤지만 없어서는 안 된다는 말에는 많은 설명이 필요합니다. 없어서는 안 되는 그런 하나님을 설명하려니 통일교회 원리 같은 것이 필요하지요.

창조원리의 이성성상이 왜 있어야 되느냐, 어떤 것이 주체이고 어떤 것이 대상이냐 하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따지고 따지고 따져 가지고 더 따질 수 없을 때 돌아 나온다는 거예요. 암만 파더라도 돌아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년 만년 그렇게 되니까 할 수 없이 `아, 요 길밖에 없구만. 더 찾을 필요 없다' 하게 될 때 원리라는 말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리라는 것은 변할 수 없는 거예요.

옛날에도 그랬잖아요? 원형이정(元亨利貞)은 천도지상(天道之常)이라! 원형이정이라는 것은 변할 수 없다 이겁니다. 인의예지(仁義禮智)는 인성지강(人性之綱)이라고, 소학(小學)에도 그런 말이 있지요?

마음이 마음대로 변할 수 있어요, 변할 수 없어요? 역사시대에 `나는 이 세계에서 위대한 사나이로 태어났으니, 이제부터 인간 마음의 방향을 전환하고 상하 전후를 전부 다 까꾸로 뒤집어 놓겠다'고 큰소리를 수천년 했다 하더라도 그 말대로 실행이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그것이 되면 그만입니다. 그것이 되면 이상이고 무엇이고 다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다면, 마음이 제멋대로 돌아갈 수 있다면 세상 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