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9집: 우리의 처지 1972년 07월 02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58 Search Speeches

우리의 처지" 사'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하기 위한 것

여러분의 손발이 통일교회를 사랑하기 위해 얼마나 움직여 봤느냐? 손발이 내 밥을 먹기 위해서는 많이 움직여 봤고 내 눈이 많이 움직여 봤지만, 통일교회 식구를 사랑하기에 얼마나 움직여 봤느냐? 통일교회를 위해서 내 땀을 얼마나 흘려 봤으며 내 노력을 얼마나 했느냐? 피곤한 몸으로 잠자리에 들게 될 때 누구를 사랑하기 위해서 그랬느냐? 자기를 위해서 그랬다면 부끄러움이요. 세계를 사랑하려고 그랬다면 영광입니다. 천국의 한 탑을 쌓는데 한 조각 한 조각 올려 쌓은 터전이 그 피곤한 잠자리 가운데 쌓여져 올라가는 것이 아니냐? 사랑하자. 그래서 교회를 넘고 나라를 사랑하자. 우리가 그 놀음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저께도 잠깐 이야기했지만 열교(裂敎)가 있습니다, 일반 전통적인 기독교를 중심삼고 보게 되면 예수 믿는 것 이외에는 전부 다 지옥간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열교의 책임자들이 지금 선생님을 만나자고 합니다. 수택리 언제 가느냐고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몇 해 전부터 만나자고 해도 내가 안 만나 주고 있습니다. 한다 하는 사람들이 만나자고 해도 안 만나 주고 있습니다. 왜 안 만나 주느냐? 먼저 기독교 책임자들을 만나고 나서 만나야 할 것이 선생님 책임이기 때문입니다. 그걸 알고 있다구요. 모르지 않습니다.

기독교 목사들 보면 나하고 원수입니다. 칼이 있으면 등골의 뼈가 우썩 부서지는 것보다도 더욱 폭삭 녹아질 수 있을 정도로 찔러 버릴 수 있는 원수들입니다. 용서 할 수 없는 원수들이다 이겁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을 잡아죽이려고 별의별 놀음을 다 했습니다. 용서할 수 없는 원수들이지만 2천년 역사시대에 있어서, 이스라엘 민족을 잃어버린 그 시대에 있어서 하나님에 대해서, 우리 아버지를 대해서 효성의 도리를 지키겠다고 죽음의 대가를 치러 나온 기독교가 아니냐는 것입니다.

딱 요셉과 마찬가지입니다. 열 한 형제가 요셉을 팔아먹고, 원수와 같이 취급해서 죽이려고 했던 입장에 섰습니다. 요셉에게는 그 열 한 형제는 형제가 아니라 원수입니다. 원수가 어려운 자리에서 찾아오게 될 때 당장에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일생 일대의 분한 마음이 있었지만 부모를 사랑하는 요셉은 그러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자신이 부모를 모시지 못하고, 부모 앞에 효도해야 할 입장에서 들려 날 수밖에 없었을 때, 부모를 위해서 울타리가 되었던 것이 그 형제들이 아니냐는 거예요. 형제들을 부모를 봐서 용서해 주었습니다. 선생님이 딱 그 마음입니다. 그건 누구도 모를 거라구요. 그래서 그들을 끌고 나가는 것입니다.

만일에 열교(製敎) 사람들을 대해 주면 모든 것을 몽땅 빼앗겨 버립니다. 빼앗겨 버리면 어떻게 되느냐? 2천년 역사는 어디로 가느냐 이겁니다. 서자가 종손이 되는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선생님이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습니다. 이 한계 때까지 선생님이 해야 할 책임을 아직까지 다 못했다 하는 것이 선생님 생각이기 때문에 지금 만나지 않고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걸 보면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은 누구보다도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통일교회가 고생을 좀더 하더라도, 통일교회가 좀더 어려운 길을 가더라도 그냥 그대로 전통을 살려주고, 빛날 수 있는 결과를 같이 맞이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역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갈길이 아니냐,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우리가 조금 편하게 된다고 '아이고, 나 그거 좋소' 하게 되면 그것은 장날의 장돌뱅이밖에 못 되는 것입니다. 반짝했다가 보따리 싸 가지고 떠나는 장돌뱅이밖에 못 되는 겁니다. 자리잡은 장사꾼은 못 되는 것입니다. 자리잡은 장사꾼은 손해가 나더라도 그 단골손님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손해를 감수할 줄 아는 것입니다. 그런 판국을 거쳐서 자리를 잡게 되면 장사가 잘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여러분, 통일교회는 사랑을 받기 위한 패들이 아니예요. 알겠어요?

사랑은 사람을 통해서 받는 것보다도 하나님을 통해서 받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한 것만큼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사랑한 것 이상, 자기가 사랑 하고 나면 다 없어지는 줄 알았는데 열만큼 쓰면 열 둘의 순이 나왔다는 겁니다. 알겠어요? 자기 것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 커지더라 이겁니다. 이 재미를 본 사람은 또 한다구요. 통일교회 문선생이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어떤 어려운 길을 가더라도 마지막인 줄 알게 되면 신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그것입니다. 뜻을 위해서 지향하는 곳에 있어서 체면과 위신과 환경을 망각해서 하늘이 원하는 방향에 일치될 수 있을 때 아론의 지팡이가 역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도 살아 계신 하나님이 가시는 길 앞에는 마찬가지의 공식이 적용되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 놀음을 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래 여러분들도 그런 놀음을 하게 되면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이런 말을 한 것을 알고…. 우리의 처지는 사랑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위한 것입니다. 난 나를 위해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종합적인 미래를 위해 투자하려고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신념에 입각한 사람은 역사를 정복하여 이기게 되면 나를 정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위대한 사람이고, 그런 사람들로부터 역사와 하늘의 승리는 완연히 빛을 발해서 승리적 터전을 남길 수 있는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을 여러분이 기억해야 될 것을 알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