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5집: 제8회 하나님의 날 말씀 1975년 01월 01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1 Search Speeches

3차 7년노정을 가기 위한 승리적 기반

그렇기 때문에 1970년에 가정들이 선생님을 중심삼고 총출동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 못 된 것을 탕감하기 위해 3년노정을 거치며 민족을 붙들고 눈물을 흘려야 했던 거예요. 그래서 축복받은 가정들은 애기들을 반대하던 어머니 아버지한테, 흑은 고아원이라든가 여러 분야에 맡겨서 축복가정 애기들이 서로 흩어져서 십자가를 지고 외로움을 당하고 눈물을 흘리는 입장에 섰던 것입니다. 그럴 때, 지금까지 반대하던 기성교회 사람이라든가 나라 사람들 가운데 통일교회는 밉지만, 통일교회 아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서 어머니 없는 애기들을 붙들고 눈물을 짓는 무리가 있었어요. 여러분은 모르지만 주위에 그런 사람이 없지 않았을 거예요.

그럼으로 말미암아 교회의 사람들이, 혹은 나라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반대했던 것을 탕감하고, 한민족의 가정이 선생님의 가정과 여러분의 가정을 따라 나가서 가정적 기준을 영적 기준에다 연결할 수 있는 기점이 된 거예요. 육적 기준에서는 안 되는 거라구요.

만일 여러분이 육적 기준을 중심삼고 뜻을 이루어 나가는 입장에 섰다면, 이것은 완전히 실패입니다. 영적 기준이었기 때문에, 나갔다가 돌아 와서 회개하고 또 나갈 수 있는 영적 복귀노정이었기 때문에 여러분의 가정적인 핍박 3년노정, 혹은 희생 3년노정을 거쳐 영적이나마 이 민족이 하나님 앞에 다시 연결될 수 있는 조건을 이어 놓은 것입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민족적 기준이 우리 가정들과 연결될 수 있는 조건이 성립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 기반을 통해서 선생님은 세계적인 3차 7년노정을 가기 위해, 1972년부터 1974년까지 세계적으로 영적 세계기반인 기독교를 흡수하고 거기에 중심적인 하나의 방향을 설정해 놓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국에서는 핍박을 받았지만 세계적 무대에서는 핍박을 받아서는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한국에서는 공격을 받았지만, 탕감복귀원칙에 의해 세계적 무대에서는 내가 공격을 해서, 내가 공격을 해 가지고 후퇴하지 않고, 밀려나지 않고 전체가 공인하는, '아, 레버런 문은 승리했다'는 결정적인 자리에 섰던 것입니다. 이것은 영적 세계의 기독교 기반을 주도적인 입장에 서서 완전히 흡수할 수 있는 기준이 세워진 것입니다. 미국 청년들과 서구세계 청년들을 단결시켜서 하나의 국가적인 운세권을 움직이고, 국가 전체를 다시 연결할 수 있는 기반을 3년노정에 완전히 승리적으로 끝마쳤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제2차 7년노정을 무난히 넘기고 이번에 돌아와서 제3차 7년노정을 맞이하여, 영적만이 아니라 영육을 중심삼은 차원을 남길 수 있게 됐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다구요.

원리적으로 볼 때, 2차 7년노정에서부터 올라간 것이 아니냐 이겁니다. 다시 말하면 아담 해와로부터인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인류 전체를 복귀해야 됩니다. 인류는 누구의 아들딸이냐 하면, 물론 타락한 아담의 아들딸입니다. 그러므로 복귀하려면 타락한 아담의 아들딸 외에 타락하지 않은 아담이 있어야 되고, 타락하지 않은 해와가 있어야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재림시대에 신랑 신부의 기준이 생겨나는 거라구요.

그런 관점에서 통일교회 자체를 두고 보면, 소생적 7년노정에서부터 장성적 7년노정을 갈 때까지 어머니를 보좌하는 데 있어서는 충성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된다구요. 왜 그러냐 하면, 타락한 어머니의 입장에서 복귀할 수 있는 개인적 십자가, 가정적 십자가…. 모든 십자가를 짊어지고 아버님 앞에 해와가 실패했던 모든 것을 탕감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해주어야 할 한 여성이 없어서는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역할을 하는 데 있어서 지금까지의 중심인물은 최선생이었다 이거예요. 이것을 그냥 그대로 밀고 나갈 수 없는 것이 원리적입니다. 왜그러냐 하면, 완성급이라는 것은 반드시 부부, 두 사람이 넘어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이 가는 길이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