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8집: 섭리사로 본 우리 교회와 한국통일 1989년 02월 19일, 한국 본부교회 Page #76 Search Speeches

어떤 사람이 인격자인가

그렇기 때문에 인격자라고 할 때는 반드시…. 역사시대를 거쳐온 모든 시대 시대에 있어서 인격자라고 하는 그 인격자가 뭐냐? 그것은 종적인 기준과 횡적인 기준을 대해서 어느때나 어울릴 수 있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어디 가서 어울리지 못하면 얼마나 거북해요? 그렇지 않아요? 그 축에 못 들어가니 고통스러움을 느낄 때가 많을 거예요.

그러면 그 축에 들어갈 수 있는 내용의 그 골자가 어떻게 되느냐? 종적인 내용과 횡적인 내용이 대표되는 곳입니다. 크고 작은 그런 차이는 있는 겁니다, 그게. 크고 작은 차이는 있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국민학교 학생하고 대학생하고는 배움에 있어서 물론 크고 작은 차이가 있는 겁니다. 그러나 서 있는 데 있어서의, 배움에 있어서의 이 종적 기준은 같아야 됩니다. `공부를 잘한다' 할 때에 그 잘한다는 것이 뭐냐? 전체의 표준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역사는 흘러가더라도, 역사는 자꾸 흘러가서 뒤넘이쳐서 사라져 가더라도 역사를 이어받아 가지고 중심적인 모체, 중심적인 내용을 제시할 수 있는 자리를 지탱시켜 나가야 됩니다. 그게 뭐냐 하면 종적인 자리라고 하는 겁니다, 종적인 자리. '공부 잘한다!' 할 때 국민학교 학생이 공부 잘한다고 하는 것하고 중학생이 공부 잘한다고 하는 것하고 고등학교 학생, 혹은 대학교 학생, 또 그 이상, 뭐 사회생활에서 그 사람이 훌륭하다고 하는 그건 뭣이 다르냐? 크고 작은 차이가 있어요.

그러면 그 종적 기준에 있어서 이 사람을 보게 되면 종적인 기준에 있어서 크고 작은 관계는 있지만 종적으로 이것이 하나되어 있는 데는 틀림없게 될 때는 어색하지 않아요. 여기에 이 종적 기준이 전부 다 이런데 한 놈이 이렇게 되어 있다면 얼마나 그거 어색해요? 이건 사방으로 부딪치는 것입니다. 자기가 아무리 똘똘똘똘하더라도 어디 가도 부딪친다 이거예요. 자기의 안착점이라는 것을, 자기위치의 보호권을 상실해 버리는 자리에 서기 때문에 어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적 기준에, 완전히 수직선에 대응하는 내 위치를 가진 그런 기준이 인격 기준이 될 것입니다. 그다음에 또 뭐냐? 종적 기준이 있으면 또 뭐가 있느냐? 자동적으로 횡적 기준이 나와요. 종이라는 말 자체가 횡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 한국으로 말하면, 그게 어떤 것이냐? 한국 사람들 생활하는 것은 말이예요, 횡적으로 보게 되면 먹고 사는 데는 전부 다 같지 않다구요. 서양 사람이 먹고 사는 것하고 한국 사람이 먹고 사는 것은 다르다구요. 여기서는 밥을 해 먹고 고추장을 먹고 김치를 먹고 이런다구요. 서양에서는 햄버거를 먹고 치즈를 먹고 빵을 먹고 그래요. 그런 사회에서의 거기에 보조를 못 맞추게 될 때는 지탄받는 거예요. `저 사람은 먹는 데 있어서 까다로운 사람이다. 정상적이 아니다' 그래요. 까다롭다는 건 뭐냐 하면 어디에 가서 어울리지 못한다는 겁니다.

횡적 기준만 딱 되면 과거의 우리 조상으로부터 쭉 거쳐 나오는 전 4천만 민중 가운데 어디 가든지 통할 수 있어요. 밤이나 낮이나 언제나 통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여기에 부합되지 못하고 까다로운 이런 식사면 식사를 하게 될 때는 모든 면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겁니다. 과거에도 안 맞고 지금도 안 맞고 미래에도 안 맞는다 이거예요.

이렇게 볼 때, 횡적 기준에 있어서 어울릴 수 있는 그런 생활을 우리 인간들은 해 나가기 때문에 인격자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종적 기준에…. 무슨 도의 생활, 무슨 뭐 수양이라든가 무슨 뭐 사회 생활이라든가 법을 중심삼고 사는 전체 사회 구조, 혹은 체제를 중심삼은 상하관계, 이거 다 좋다는 거예요. 어디 가나 종적 기준을 중심삼고 보조를 맞출 수 있어야 되고 횡적 기준을 중심삼고 보조를 맞출 수 있는 입장에 서야 돼요. 그럼으로 말미암아 어느 누가 이로부터 지장을 받지 않는다는 거예요, 이게. 어떠한 환경에 장해를 주지 않는다 이거예요. 뿐만이 아니라, 이러한 기준이 되게 된다면 모든 종을 추구하는 사람과 횡을 추구하는 사람은 이 장해되지 않고 표준이 될 수 있는 그를 중심삼고 하나되어 가지고 높이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의 본성 작용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잘 알 거예요.

자, 이렇게 볼 때, 그 인격자라고 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그 인격자는 역사를 대신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역사를 어떻게 엮어 오느냐? 종적인 이거 뭐…. 신으로부터 인간, 상류계급 하류계급, 잘사는 사람 못사는 사람, 잘난 사람 못난 사람, 문명인 미개인을 막론하고 위로부터 수직적인 인생살이의 기준 앞에, 거기 어디에 갖다 맞추더라도, 어디에 갖다 세우더라도 동화될 수 있다 이겁니다. 그렇게 봐야 될 거 아니예요?

인격자라는 것은 누구를 표준하느냐? 이런 종적 기준을 엮어 나오는 그 기준 앞에 아래 갖다 맞춰도 맞고, 종적인 이 아래에 갖다 대더라도 상충이 안 되고 어울리고 위에 갖다 대더라도 어울리는 거예요. 인간의 맨 낮은 분야에 이것을 연결시켜도 화합이 가능해요, 뭐 중심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서 신이 있다고 하더라도 신의 세계에 갖다 맞춰도 화합이 될 수 있는, 저 위의 종적 축으로부터 아래 축까지 화합할 수 있는, 상충이 벌어지지 않고 상대적인 위치에 설 수 있는 기준을 가진, 그러한 표준적인 종적 내용을 가진 인간이 있게 될 때 그것은 종적인 면으로 본 인격적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아시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

그 반대로, 개인·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 횡적인 세계를 두고 볼 때 이 사람은 말이요, 어디에 갖다 맞추더라도, 저 서양 사회의 독일 산골에 갖다 맞추더라도 말이요, 이게 횡적으로 착착착착 맞는다 이거예요. 그래 가지고 동양에, 한국에 와서 고추장을 먹는데도 맞는다 이겁니다. 화합할 수 있는, 이런 동화할 수 있는 박자를 맞출 수 있는 내용을 지닌 그런 사람이 인격자가 아니겠느냐. 그렇게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