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7집: 여성 해방시대와 이상적 선거제도 1992년 11월 16일, 한국 한남동 공관 Page #160 Search Speeches

하나님의 창조이상은 사'을 '심삼고 대상권을 이루" 것

여자들은 전부 다 문총재의 뒤를 따라야 돼요. 왜 그래야 되느냐? 아담은 하나님의 아들이고, 해와는 하나님의 딸이지요? 아담이 완성해서 아버지가 되고, 해와가 완성해서 어머니가 되기 위해서는 그 전에 하나님의 아들딸로서 완성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 사랑을 중심삼고 완성한 아들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표준이 있을 거 아니예요? 그것이 아담 해와의 두 사람이라는 거예요.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보면, 아담과 해와는 자녀의 자리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창조물을 보면 모두 쌍쌍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성성상의 주체니만큼 인간인 남성 여성이 쌍태와 마찬가지라구요.

아담 해와는 하나님의 아들딸로 태어났지만, 하나님의 속에 있던 쌍태가 실체로 나타난 거예요. 무형의 남성 여성의 쌍태가 유형의 남성 여성의 실체로 나타난 것이 아담 해와입니다.

그것이 왜 쌍태예요? 쌍둥이는 선둥이와 후둥이가 있는데, 선둥이가 괴로워하고 슬퍼하면 후둥이도 자기도 모르게 괴롭고 슬퍼진다는 거예요. 밥 먹는 시간도 같이 느낀다는 것입니다. 형님이 '아, 배가 고프다. ' 하면 동생도 밥을 먹고 싶고, 또 동생이 밥을 먹고 싶으면 형님도 밥을 먹고 싶은 거예요. 쌍둥이는 그렇게 같이 느낄 수 있는 심정권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지요. 남자 여자도 마찬가지예요. 하나님으로부터 같이 출발했기 때문에, 같이 수평선에 서 있기 때문에 같이 느껴야 되는 거예요.

이것은 이론적으로 맞는 말이에요.

하나님의 아들딸이 이렇게 시작한 거예요. 하나님의 무형의 심정권의 내용을 실체 심정권으로 완성시켜 가지고 무형과 유형이 하나되기 위한 것이 창조이상입니다. 창조이상은 사랑을 중심삼고 대상권을 이루자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모든 이론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볼 때 아담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완성되어야 하고, 해와는 하나님의 딸로서 완성되어야 합니다. 그다음에는 형제예요, 형제. 부모를 중심삼으면 종적이지만, 형제는 상대적이라구요. 주고받는 길이 있지만, 형제는 갈라진다구요. 갈라져 나가는 거예요. 남자는 남자의 길을 가야 되고, 여자는 여자의 길을 가야 됩니다. 둘이 같은 일을 해서야 되겠어요? 남자가 할 수 있는 일이 다르고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이 다른 거예요. 남자는 개척적입니다. 남자는 높아지려고 하고, 여자는 그것을 받들려고 합니다.

그래서 여자들은 전부 다 왔다갔다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한 자리에 가만히 있으면, 돌아가더라도 앉아 가지고 궁둥이를 중심삼고 이렇게 돌아간다구요. (웃음) 그래서 여자의 궁둥이가 큰 것입니다. 남자는 궁둥이가 작아요.

상대적입니다. 또, 남자는 어깨가 무겁고 여자는 어깨가 가볍습니다. 어깨가 가볍다는 것은 위를 지탱하기보다는 밑창을 받들기 위한 뜻이 있는 것입니다. 여자를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형제의 사랑이 완성되는 거예요. 하나님이 바라는, '아, 우리 아들딸은 형제끼리 요렇게 살아가야 된다. ' 공식적인 폼(form;방식)이 있습니다. 그 무형의 폼이 실체를 이루어야 됩니다. 그것이 누구에게 이루어지는 거예요? 아담에게 이루어지고, 해와에게 이루어지는 거예요. 아담은 형제 중의 대왕 마마이고, 해와는 형제 중에 대비 마마다 이거예요. 하나님이 마음에 바라는 형제지애의 대표자가 아담 해와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자녀의 사랑에 형제의 사랑을 플러스해서 그렇게 커 나가는 거예요. 커 갈 때는 어떻게 커 나가느냐? 오빠를 어떻게 사랑해야 되고, 동생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를 생각할 때는 그 방법이 없다구요. 그 방법이 뭐냐? 유치원 다니는 학생들도 학교에 갔다 오면 엄마를 찾지요? 엄마 아빠를 찾아요, 아빠 엄마를 찾아요? 「엄마 아빠를 찾습니다. 」 남자들, 한번 대답해 봐요! 「엄마 아빠를 찾습니다. 」 틀림없구만! (웃음) 그렇다는 거예요.

유치원에 가는 학생들은 언제나 엄마 아빠를 생각하고 난 후에야 '엄마 아빠가 나같이 사랑하는 누이동생이 어디에 있지? ' 하고 생각한다구요.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형제끼리는 어떻게 사랑해야 되느냐? 유치원에 가는 아이들도 반드시 어머니를 놓고 사랑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지…. 안 그래요? 아담은 오빠의 자리에 서 가지고 누이동생이 되는 해와를 어떻게 사랑하느냐?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을 중심삼고 어머니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는 것과 같이 사랑하면 되는 거예요. 어머니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는 것처럼 동생도 사랑한다는 거예요. 언제나 형제끼리 사랑하게 될 때는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에 자기의 사랑을 플러스한 것만큼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