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집: 찾으시려던 예수님 1959년 10월 18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320 Search Speeches

예수의 진정한 부모 형제

예수는 하나님의 위신을 세우기 위하여, 역사적으로는 4천년 동안 하늘의 뜻을 받들면서 희생한 수많은 선지자들의 해원을 위하여 왔었습니다. 시대적으로 사탄세계에 사탄의 유린을 받고 있는 민족의 분함을 해원하기 위하여 왔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을 못하고 갔습니다. 못하고 갔어요. 해원하러 왔는데 못하고 갔으니, 다시 와야 할 운명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찾고 계신 것은 무엇이뇨? 예수가 애타게 찾고 있는 것은 무엇이뇨. 선의 나라입니다, 선의 나라. 승리의 나라요, 영광의 나라요, 기쁨의 나라입니다.

그런데 예수가 선한 사람을 만났습니까? 못 만났습니다. 예수는 형제들한테서 몰려났습니다. 부모한데서도 몰려났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를 그렇게 만들기 위해 이스라엘 민족을 세웠겠어요? 예수를 그렇게 만들라고 유대교단을 세웠겠어요? 아담 이후 4천년 동안 섭리의 뜻을 인계시켜 나오면서 요셉 가정으로 예수를 보내실 때 그렇게 대접하라고 보냈겠어요? 30여년 동안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생활하면서 메시아를 모시기 위하여 준비할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그렇게 모시라고 보냈겠어요? 다 가버렸습니다. 다 지나가 버렸습니다.

이렇게 예수가 이 땅 위에 왔는데도 불구하고 민족이 저버리고, 예수는 자기를 맞기 위하여 준비한 민족의 뒤를 따라오던 사탄과 정면충돌하게 된것입니다. 예수를 맞아 놓고 돌아서서 사탄을 향해 반격을 해야 할 택한 선민들이 다 가 버리고, 홀로 남은 예수가 일선에 서서 싸우다 돌아가신 그 길이 십자가의 길입니다.

하늘의 정병들을 선두에 세워 놓고 사탄세계를 향하여 행군의 명령을 해야 할 예수였는데, 당신만이 남고 다 가 버렸습니다. 동방박사는 어디 갔으며, 안나는 어디 갔으며, 목자는 어디 갔으며, 세례 요한이 어디 갔으며, 요셉 가정은 어디 갔으며, 그 형제 친척은 어디 갔으며, 교단은 어디 갔으며, 민족은 어디 갔으며, 나라는 어디 갔느냐? 다 지나갔습니다. 다 지나갔어요. 다 지나갔으니, 예수님은 나는 너희들을 위하여 죽었다는 이 인연을 맺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고 다시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지나가고 이 나라는 망해버리지만, 하늘은 바라볼 것이다 하는 예수였기 때문에 천상에 올라가 그 민족을 위하여 다시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 예수의 사정이 이러하다면 예수의 소원이 무엇이겠어요? 참다운 제자를 찾는 것입니다. 예수가 찾는 그 참다운 제자는 하나님이 찾으시는 제자요, 예수가 증언할 수 있는 제자입니다.

제자들이 중심이 되어 예수가 편안히 쉴 수 있는 환경을 이루어 드린 적이 있었습니까? 예수에게 가정이 있었어요? 예수의 모친과 동생이 찾아 왔을 때에 그는 하늘 아버지의 뜻대로 사는 자라야 나의 모친이요 나의 동생이라 했습니다. 예수에게는 모친도 없고 동생도 없었습니다. 예수에게는 친척도 없고 민족도 없었습니다. 예수에게는 가정도 없고 형제도 없었습니다. 안 그래요? 예수님은 그것이 분하여 죽은 후 영계에서도 모친과 형제, 종족, 민족, 교회, 나라, 세계를 찾아나왔는데, 그것이 기독교 2천년 역사입니다. 예수는 하나님이 찾아 세우신 이스라엘을 잃어버리고 이 땅 위에 한 조각의 소유물도 세워 놓지 못하고 갔기에, 다시 와야 합니다. 예수를 중심삼은 예수의 가정, 예수의 종족, 예수의 민족, 예수의 나라, 예수가 꿈꾸던 세계를 이루지 못하고 갔으니, 다시 와야 돼요.

여러분들, 끝날에 다시 와야 할 예수께 또 다시 서글픔이 미쳐질까봐 염려하는 자 있습니까? 예수의 동생이 되어 봤습니까? 이것을 하늘은 묻고 싶은 것입니다. 나이 많은 분들, 예수의 어머니 아버지와 같은 입장에서 예수를 사랑하고 싶은 마음을 가져 보았습니까? 예수와 같은 심정으로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을 그렇게 아끼고 그 아들 딸을 위하여 뼛골이 녹아나고, 자기에게 피곤함과 어려움이 엄습해와도 그것을 개의치 않고 붙안고 눈물흘리는 신앙생활을 해 보았습니까?

어느날 이 땅 위에 예수는 다시 찾아옵니다. 무엇 때문에 오느뇨? 사랑하는 제자를 다시 찾기 위해서 옵니다. 역사노정에서 배반한 제자들을 다시 찾아가서 머리를 숙이게 하고 끌어모아서 그들을 중심삼고 뜻을 세워 나와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하나님의 한이요 예수의 한입니다. 이런 한을 남긴 것이 우리 선조들의 수치요, 우리 역사의 수치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사도를 높이 높이 받들어 모시고, 그들이 하늘의 자극한 사랑을 받는 자로 알고 있지만 결코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알고 보면 그렇지 않아요. 그들은 인류를 대표하여 위안해 드려야 하는데, 그것을 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죽고 나서 용서를 빌어야 했던 신세였음을 한해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