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6집: 우리의 수치 1973년 03월 11일, 미국 벨베디아수련소 Page #20 Search Speeches

하나님의 한을 '어 "리" 승리적 -사의 책임자

자, 여러분, 자신을 위하는 사람이 여러분을 붙들면 좋아해요? 쳐 버리는 거라구요. 그렇지만 여러분을 위해서 매를 맞고, 여러분을 위해서 슬픔을 당하고, 여러분을 위해서 죽고, 여러분을 위해서 억울함을 당하더라도 '나는 당신을 위해 태어났다'고 하는 그런 사람이 여러분을 붙들면 어때요? 붙들어 주면 줄수록 좋아한다 이겁니다.

하나님에게는 '내 슬픔을 풀어 다오' 이것이 첫번째 소원입니다. 그리고 두번째는 '내 고통을 풀어 다오'입니다. 그러면 누가 그 소원을 풀어줄 것이냐? 하나님 자신은 못 푸는 것입니다. 그것은 상대적으로 저끄러진 것이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풀래야 풀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 하나님 자신이 풀 수 있어요? 그러니 우리가 풀어 드려야 합니다. 그러니까 길은 딴 것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위해서 천 번이고 만 번이고 죽겠다는,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내가 희생하겠다는 그것밖에는 없다구요. 그러한 깊은 것을 중심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성경은 '하늘을 위해 우리의 생명을 바쳐라. 뜻을 위해 바쳐라. 뜻을 위해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하는 자는 죽는다'라고 했던 것입니다. 이 역설적인 말이 타당한 말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야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신자들은 이 역사적인 전통의 내용이 이렇게 되어 있는 줄을 몰랐다구요. 이제 우리는 알았어요, 몰랐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중심삼은 심정문제입니다. 이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상대하는 문제가 최후의 길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이 통일교회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담 가정을 배울 때 아담 가정의 슬픔은 무엇이었더냐? 노아 가정의 슬픔이 무엇이었더냐? 노아 가정의 고통이 무엇이었더냐? 노아의 고통이 하나님의 고통을 대신했고, 노아의 슬픔이 하나님의 슬픔을 대신했고, 아브라함이 그러한 자리에 있었고, 모세가 그러한 자리에 있었고, 세례 요한이 그런 자리에 있었고, 예수님이 그러한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이 통일교회를 지도하는 선생님도 그러한 자리에 서서 가야된다는 그런 결론이 나온다구요. 그러므로 우리의 슬픔은, 통일교회의 슬픔은 내 슬픔이아니라 아담의 슬픔이요, 노아의 슬픔이요, 아브라함의 슬픔이요, 모세의 슬픔이요, 오시는 재림주님의 슬픔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슬픔은 뭐냐 하면 아담의 슬픔, 노아의 슬픔, 아브라함의 슬픔이 플러스돼 있는 것입니다. 점점 더 크게 돼 나왔다는 거예요. 즉 개인적인 슬픔에서부터 가정적 슬픔, 민족적 슬픔, 국가적 슬픔, 세계적 슬픔으로 자꾸 커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있다구요.

당신의 마음에 묻혀 있는 슬픈 심정을 전부 다 내가 탕감해서,나로 말미암아 기쁠 수 있게 하고, 아담 가정에 대해서 기쁘지 못한 것을 보충하고, 노아, 아브라함, 모세, 예수시대를 거쳐서 지금까지의 슬픔을 전부 다 취소해 버리고, 나로 말미암아 그것을 그렇게 만들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나는 그 길을 가겠다고 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돼요. 이런 사람들이 전부 다 실패했기 때문에 나는실패하지 않고, 이것을 실패한 하나님을 밀어 드려서 하나님의 한을 풀어 드리는 승리적 역사의 책임자가 되겠다는 신념을 가져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