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집: 예수님의 한 1968년 01월 15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46 Search Speeches

예수님의 말"과 행동과 실체를 그리워하라

타락한 우리 인간들에게 참부모의 말씀과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하다 할진대 비유와 상징이 아닌 사실 그대로의 말씀이어야 합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바와 같이 2천년 전의 예수는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은 자신의 해원과는 하등의 관계를 갖지 못하는 입장에서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말씀의 목적은 행동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을 중심으로 하여 나왔던 기독교는 오늘날 왜 이렇게 되었느냐?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이 어떤 말씀인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어떤 말씀이었느냐? 그 말씀에는 모험이 따르고 곡절이 내재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끝날에는 성경을 붙들고 밤새워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너희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시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마 6:6)"고 했습니다. 그런데 찾아오는 데는 말씀으로 찾아오시는 것이 아니라 실체를 갖고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찾아오실 것인가?

오늘날 우리 자신들이 서 있는 이 자리가 본래 예수님이 말씀에서 주장하고 바라던 목표의 자리인지를, 또한 이 자리가 십자가의 고난을 느끼면서 다시 찾아오시는 예수님의 자리인지를 세상 사람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이제 말씀을 통하여 내 심정에서 혁명이 일어나는가를 판단해야 하겠습니다. 즉, 이 말씀이 나를 격동시켜 죽음의 골짜기도 능히 넘어가게 하는가, 내적으로 충격을 주어서 행동의 주체로 설 수 있게 하는가를 스스로 판단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우리는 2천년 동안 말씀을 그리워했습니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들은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말씀을 그리워하는 반면 행동을 그리워해야 합니다. '예수가 이렇게 이렇게 갔으니 나는 이렇게 가야 되겠다' 하는 행동을 그리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는 어떤 분이냐? 인류의 참부모입니다. 그런 예수님이 말씀을 통하여 죽어갔으니 여러분은 가실 때의 그 행동을 그리워해야 합니다. 말씀을 그리워하고, 행동을 그리워하고, 그 다음에는 그 모습을 그리워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부모 이상으로 그리워해야 합니다. 밥 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자는 것도 잊어버리고 자기의 모든 처신도 잊어버릴 정도로 보고 싶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때가 있었습니까?

행복은 어떤 길에서 이루어지느냐? 말씀을 잘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행동을 잘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워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의 얼굴이 어떤 모습이겠습니까? 그의 손발이 어떠할 것 같습니까? 그 코와 눈, 그 모습은 이러할 것이니 그 모습을 만지고 싶고, 그 모습을 더듬어 보고 싶을 정도로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 있어서 최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말씀의 중심인 예수님, 그러나 예수님이라는 이름이 여러분을 구원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이름이라는 것은 외적인 것이기 때문에 실체의 예수를 그리워해야 됩니다.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예수님. 가실 때 다시 온다고 했던 그 예수님은 왜 안 오시는가? 부활 직후 사도들 앞에 나타났던 그 예수님은 어찌하여 온 만민 앞에 못 나타나는가? 이게 무슨 곡절인가 ?

오늘날 우리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뵙고 싶어하는데 무슨 곡절이 있길래 나타나지 못하시는 것인가? 그러나 날이 가고 해가 가는 것도 개의치 않고 변함없이 예수님의 모습이 그리워 허덕이는 자가 있다할진대 그 사람에게는 기필코 그분과 상봉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