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집: 복지는 부른다 1966년 03월 13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60 Search Speeches

사명을 망각한 아브라함

복귀의 길을 걸어 나오시면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불러 세우시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아!' 하는 그 음성은 아브라함 한 사람만을 부르시는 것이 아니였습니다. 그것은 그 옛날 아담 때 사무쳤던 한의 마음을 품고 그때 잃어버렸던 복지를 다시 찾으려는 울부짖음이요, 동시에 새로운 복지의 주인을 다시 부르시는 음성이었고, 복지의 가정과 복지의 민족과 복지의 세계를 이루기 위한 음성이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책임을 짊어진 아브라함 자신은 하나님의 그 음성이 복지를 소망하는 부르짖음이요, 역사의 비참상을 해원성사해 달라는 부르짖음이라는 사실을 몰랐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제단에 제물을 올려 놓는 순간은 복지의 세계를 이루기 위한 약속의 순간이요, 역사적인 한을 풀 수 있는 결판의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제사를 드리라는 말씀의 참 뜻을 깨닫지 못하고, 그 자신이 짊어져야 할 하늘의 사명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가를 깨닫지 못한 채, 자기의 입장만을 중심삼고 제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물을 쪼개지 않고 드린 것이 또다시 하나님의 슬픔을 자아내는 동기가 되었으며, 후일 예수님의 십자가의 동기가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원리를 통하여 배웠습니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아브라함은 동이 터오는 복지를 주관할 수 있는 새로운 선지와 선조로 현현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복지를 부르짖고 애원하시는 하나님 앞에 나타난 아브라함은 그러한 것을 모두 감당할 수 있는 자세와 인격을 갖추지 못하였습니다. 그것이 역사적인 한이었던 것을 우리는 다시 한번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아브라함은 역사적인 책임과 시대를 심판할 수 있는 공의의 법도를 세워야 할 책임과 미래의 소원의 세계를 이룩해야 할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망각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작다고 쪼개지 않은 제물이 역사노정을 저끄러뜨리는 기원이 될 줄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아담으로 인해 맺힌 한이 아브라함을 통해 해원되는 한 날을 바라면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찾아 오셨지만, 또다시 슬픈 마음으로 아브라함을 불러야 할 입장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 대신 그의 독자 이삭을 제물로 드리라고 다시 분부하셨습니다. 이렇게 한스러운 아버지의 사정을 누가 알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