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집: 예수의 최후와 우리의 각오 1965년 01월 31일, 일본 동경교회 Page #37 Search Speeches

심정심판

오늘까지의 기독교가 죽음의, 혹은 탕감의 조건을 세계적으로 세우는 그 역사에 있어서는 어떤 승리의 기준을 세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의 소원은 탕감의 세계만은 아니다. 이상세계의 건설인 것이다. 이 이상세계에 가까와짐에 따라서 탕감의 세계의 최후의 한계가 나타날 것이다. 그 한계를 넘을 때는 과거와 같은 신앙의 상태로서는 안 된다. 여기에 필요한 것은 현세의 인류가 흠모하고 있는 최후의 하나의 세계인 것이다. 곧 하나님의 창조본연의 이상세계인 것이다. 전부를 포괄하고 전부를 포용한 완전한 소원……. 완전하다는 것은 하나의 것을 놓아 두고 다른 것으로 한다는 것이 아니다. 역사는 그 완전한 것을 목표로 하여 움직이는 것이다.

역사와 문화의 원천으로 되어 온 종교가 최후의 단계에 와서 그 자체가 화해한다고 하는 것은 최후의 역사가 가까왔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 막다른 길에 서 있는 우리들은 무엇을 느껴야 하느냐? 지금까지 하나님의 섭리는 죄악을 없애기 위해서 개인으로부터 세계까지의 탕감의 조건을 세우셨다. 즉 희생의 역사였던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희생으로 시작해서 희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희생으로 시작한 역사를 때려치고, 심판해 버리고 새로운 이상세계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심판을 거쳐 이상 단계에 달한 완전한 개인, 완전한 가정, 완전한 세계를 하나님은 바라고 계신다. 그 완전한 이상을 예수님은 가르치지 못하셨다. 성경에는 아무리 읽어도 그런 것이 없다.

지금까지의 종교는 사회를 떠나 있는 것이었다. 사탄세계의 한가운데 들어가서 이것을 사방 팔방으로 물리치는 힘을 가진 종교는 생활을 떠나서는 안 된다. 그것이야말로 이상의 철저한 생활기준을 중심으로 하고 하나님과 함께 있고 하나님의 편이다. 하나님이 안쪽이라면 인간은 바깥쪽에 있어서 일체라고 하는, 내가 기뻐하면 하나님도 기뻐하고, 하나님이 슬퍼하시면 나도 슬프다고 하는 종교의 목적을 완성한 종교의 가치, 우리들은 그 의미와 가치를 알고서 종교관념이 우리의 생활이 근원이 되는 이상이라고 하는 견해로 이 종말의 시기를 싸워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통일교회는 무엇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느냐? 심판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님이 세계에 대한 최후의 심판을 하시기 전에 자기 개인을 심판하라. 그것은 무엇을 기준으로 하고서인가? 중심을 기준으로 하고서이다. 중심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는 데 하나님이 외적인 것으로 심판해서는 안 된다. 지상에 대한 명령관계 등을 가지고 심판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심정을 중심하고 심판하라. 문제는 간단치 않다. 따라서 금후의 세계를 움직일 이상은 무엇인가 하면 그것은 하나님에게 통하는 심정적인 것이다. 그 심정을 중심으로 하는 곳에는 평화가 없을 수 없다.

그러면 심정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신경에 이어지는 모든 것을 맡고 있다. 그것은 생활관념 등 모든 것을 통과할 수 있는 내용과 힘을 가지고 있다. 생명의 근원의 위치에 있는 것이 심정이니까 생명을 부정하더라도 심정을 부정할 수는 없다. 존재를 부정하더라도 심정을 부정할 수는 없다. 심정은 존재 이전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하는 결론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통일교회는 심정을 중심으로 하고 산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심정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심정이라는 것을 본 일이 없다. 심정이 긴 것이냐, 둥근 것이냐, 높은 것이냐 하고 따져 묻는 다면 대답할 수가 없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있으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 사람이 떠나면 그리움이 가득히 고여 온다. 신경의 최고 촉감까지 가득히 괴어 온다.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가득히 차 온다.

우리는 오감으로 한계를 잴 수 있는 그런 심정은 우리에게 필요치 않다. 설명은 되지 않으나 확실히 충일(充溢)되는 것이다. 거기에 접하면 닫힌 입이 열려진다. 울고 있는 눈이 반짝반짝 하고 웃는다. 사색(死色)을 하고 있던 사람이 평화스럽게 된다. 그것이 사라지면 비참한 것이다. 그것이 찾아오면 세계가 필요없다고 하는 것이다.

인간의 심정만 하여도 이러하니까 절대적 심정의 주체이신 하나님과 관계를 가지고 그 심정에 접한 사람은 어떠할 것인가? 이것은 표면에는 나타나지 않으나 존재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한 심정주의를 , 심정 이념을 중심으로 하고 이제 새로운 세계를 향해서 나아가자고 하는 것이 통일용사들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