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집: 한 많은 아버지를 모실 이 1959년 05월 24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44 Search Speeches

하나님의 한과 끝날의 성도가 지녀야 할 신앙자세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6천년 동안 인류를 사랑해 내려오신다고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슬픔이 있다 할진대 사랑의 심정을 통하여 스며드는 슬픔 이상의 슬픔이 없고, 고통이 있다 할진대 사랑의 심정을 통하여 스며드는 고통 이상의 고통이 없을 것입니다. 또 기쁨이 있다 할진대 사랑의 심정을 통하여 스며드는 기쁨 이상의 기쁨이 없다는 거예요.

그렇다면 하늘은 사랑이라 하였는 데 사랑이신 하늘이 기뻐하셨는 가. 그렇지 못하셨습니다. 타락한 인류를 대하고 계시는 하늘, 인간을 사랑하시는 그 하늘은 오늘날까지 기쁨의 한날을 갖지 못하셨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으로 알았는 데, 그 사랑의 하나님께는 기쁨과 행복과 평화만이 스며있는 줄 알았는 데,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인류는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의 심정을 가졌기에 인간을 구하려는 마음이 크면 클수록 그 심정에 스며든 슬픔이 크다는 것을 느끼는 자가 이 땅 위에는 없습니다. 그 사랑의 심정에 사무쳐 있는 천적인 고통을 아는 자가 없다는 것이에요.

인류는 하나님이 사랑이라는 것, 사랑의 주체가 되신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인류를 대신하여 당하고 계시는 피흘리는 곡절의 심정은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끝날에 처한 우리 성도들이 알아야 할 것이 무엇이뇨? 사랑의 하나님을 안 이상 그 하나님의 심정에 스며드는 천적인 슬픔을 알아야 되겠고, 그 하나님의 심정에 스며드는 천적인 고통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만일에 사랑을 통한 천적인 기쁨이 이 땅 위에 허락된다 하더라도 그 기쁨은 오늘날 우리가 믿고 있듯이 기쁨을 바라고 있는 성도들에게 줄 수 없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그 기쁨은 역사를 통하여 부여해야 하는 하나의 행복이요, 역사 앞에 약속되어진 하나의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이 행복과 희망은 나를 넘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나를 이끌고 가는 역사와 더불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런 연고로 하나님의 사랑이라 할진대 오늘날 그 사랑의 하나님을 붙들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자는 하나님의 사랑의 심정에 스며드는 슬픔을 붙든 자요, 사랑의 심정에 스며드는 고통을 붙든 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자라야만이 하늘의 사랑을 통하여 소개되는 행복을 유업으로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한은 무엇일 것인가. 하나님을 믿어 주는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알아 주는 백성이 없는 것이 아니예요. 사랑의 하나님에게 한스러움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심정에 스며드는 슬픔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고, 사랑의 심정에 스며드는 고통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슬픔이요 한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인류의 한을 수습하고 천적인 한을 해원하여야 할 끝날이 온다 할진대 그때에 우리들은 어떠한 주인공이 되어야 하겠느뇨. 하늘을 대신하여 슬픔의 심정을 붙들고, 고통의 심정을 붙들고 '인류를 사랑해 주시옵소서'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마음을 갖는 데서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나를 붙들고 '나를 사랑해 주시옵소서'할 것이 아니라 인류를 붙들고 '인류를 사랑해 주시옵소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무친 심정을 통하여 가지고 모르게 행동으로 움직여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인간 세상에 천적인 슬픔을 증거하는 자요, 천적인 고통을 체휼한 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