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5집: 중요한 사항 1972년 11월 19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84 Search Speeches

재창조와 심정을 앞세운 복귀

재창조 역사는 어떤 것이냐? 떨어진 것이 올라가는 것입니다. 반대의 힘으로 솟구쳐 가지고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뭘하자는 것이냐? 심정의 일치점을 세우면서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이 있어야 됩니다. 또한 믿음에 앞서 있어야 할 것은 행함입니다. 행하는 데 있어서는 자기를 중심삼고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리에서 행해야 됩니다. 사랑하는 분을 위해서 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로 잡아 놓지 않으면 복귀의 길을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역사를 두고 보면 그렇게 돼 있다구요.

이렇게 볼 때,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는 심정복귀, 심정의 세계를 말하고 있습니다. 심정의 세계는 어떤 세계냐? 보기 싫다고 하는 세계가 아니라 보고 싶다는 세계입니다. 우선 보고 싶다, 그곳에 가 보고 싶다 하는 세계입니다. 심정의 세계는 그래요. 보고 싶기 때문에 가야 할 곳입니다. 가서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났기 때문에 살아야 할 곳입니다. 사는 데는 어떻게 살 것이냐? 좋아하면서 살아야 됩니다. 주체와 대상이 어디에 가나 영원히, 주체는 주체대로 대상은 대상대로 가는 것이 아니라 주체와 대상이 영원히 공존할 수 있는 곳입니다. 거기에는 그 외의 것을, 다른 것을 소망으로 할 수 없는 곳입니다. 이런 결말이 내려진다구요.

거기에 가 가지고도 내가 뭘 바라겠다 하는 것이 아니라구요. 그곳에 가 가지고는 그 이상의 것을 바랄 수 없는 곳입니다. 그 자리가 천지를 대표한 자리요, 그 자리가 세계를 대표한 자리요. 그 자리가 나라를 대표한 자리요, 그 자리가 가정을 대표한 자리요. 그 자리가 개인을 대표한 자리입니다. 그 자리가 개인 개인의 합한 자리입니다. 그 개인 개인이 가정을 대표하고, 개인 개인이 국가를 대표하고, 개인 개인이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권위의 자리입니다. 수가 많으면 많은 자체로서 그 권위를 중심삼고 좋아할 수 있는 자리요, 적으면 적은 단위로써, 둘이면 둘로써 그 권위를 대표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그 이상의 것을 원할 수 없는 그 세계가 심정의 세계가 아니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복귀섭리를 두고 볼 때에, 타락된 것은 나 때문이 아니라 상대적 요건, 언제나 상대가 문제가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어요. 우리가 뜻을 대해 나갈 때에는 재창조의 과정을 거쳐 나가기 때문에 여러분 앞에 상대될 수 있는 그 상대가 문제입니다. 상대가 문제이기 때문에 상대를 잘 찾아야 됩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의 욕심은 말이예요. 상대가 크기를 바란다구요. 타락 인간들이 이게 폐단이라구요. 상대가 자기보다 좋기를 바란다구요. 좋은 것으로 나타나 주기를 바란다구요. 그것은 복귀섭리노정에서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있을 수 있어요? 상대가 자기보다 크고 좋기를 바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건 복귀섭리노정에서는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복귀섭리노정은 재창조 역사를 해 나오는 노정인데 그 기간의 환경의 터전은 재창조 이상을 완성한 환경의 터전이 아니다 이겁니다. 타락되었기 때문에, 이것은 하나님 앞에 여지없는 입장에 섰기 때문에 타락한 세계에서 자기보다 큰 것으로 나타나기를 바라는 것은, 좋은 것으로 나타나기를 바라는 것은 틀린 것입니다. 좋은 것으로 나타나기를 바라거들랑 자기가 그만한 노력을 투입시켜 가지고 바라야 되는 것입니다, 입장이 그렇게 돼 있다구요.

오늘날 타락한 인간들을 보게 된다면 말이예요. 결혼을 하는 문제에 있어서,‘자기 상대는 자기 보다 좋았으면’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렇지만 그건 있을 수 없는 생각입니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생각이라구요. 그럴수 있는 환경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한 환경이 되어 있다면 그것은 전부 다 가짜라구요. 그건 하나님과 인연된 것이 아니라구요. 상대는 반드시 자기보다 낮은 자리에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왜? 재창조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재창조되어야 되기 때문에…. 그래 가지고 자기가 힘을 투입한 공로로 말미암아 그가 환경을 움직여 나가고 그것이 대상적인 권(圈)으로 나타나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의 길에는 그 대상을 재창조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재창조를 하는 데는 무엇부터? 거꾸로라구요. 믿음과 행동과 사랑인데 하나님편에 섰기 때문에 믿음이 필요없습니다. 믿음이 필요없다구요. 단, 심정을 앞세우면서 재창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천지창조한 것은 뭐 그 자체를 보기 위한 것이 아니라구요. 사랑하기 위해서라구요. 사랑하기 위해서 심정을 앞에 놓고 지은 거와 마찬가지라구요. 짓는 것은 행동인데 거기에 심정을 앞세워 가지고 행동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비록 아담 해와는 작지만 그 작은 것을 작은 것으로 보지 않고 심정의 세계에서 큰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우주적 대표다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부모 앞에 자식이라는 것은, 부모는 핏덩이를 낳아 왔지만‘이 아기는 세계적 대표다’이렇게 생각하는 거라구요. 부모 앞에서는 절대적 존재라구요. 마찬가지로 하나님 편에서 보면 아담 해와는 비록 작은 것이지만 세계적인 대표다 이겁니다, 세계적인 대표. 그렇기 때문에 재창조 역사 과정에서 환경을 재창조해 나오는 데 있어서는 심정을 앞세워 가지고 행동을 하는데, 비록 작다고, 못났다고 무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는 세계적인 존재라고 생각하라는 거예요.

잘난 사람, 못난 사람을 찾아 다니는 사람들은 안 된다구요. 전도를 하더라도 저 사람 잘났느냐 못났느냐를 생각하면 안 된다구요. 벌써 잘난 것으로 되어지기를 바라는 그 자체가 원칙에 어긋난 것입니다. 잘나게끔 만들겠다 하는 마음, 나로 말미암아 잘나게끔 만들고 영향을 미쳐야 되겠다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텐데, 잘나 가지고 나에게 총은 것으로 나타나기를 바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타락했기 때문에 그런 존재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주체적 입장에서 나서게 될 때는, 내가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심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행동이 일체가 된 자리에서 그를 위하여 영향을 미치게 해서 그가 내 심정에 일치되고 내 행동해 일치되게끔 움직여야 됩니다. 즉 이렇게 나오면 이렇게 나가야 되고 이렇게 하면 이래야 됩니다. 굴리면 굴러야 되고 오라면 와야 된다는 겁니다. 그렇지 않고는 자기가 원하는 피조물로 다시 빚어 만들 수 없다는 겁니다. 이 놀음을 해야 됩니다. 이것이 오늘날 복귀섭리의 길을 담당한 인생들이 가야 할 길입니다.

오늘날 믿는 사람들은 그릴게 생각하지 않는다구요. 믿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내가 믿으면 좋게 된다’어디서부터? 여기서부터 올라가는 줄 알고 있다구요. 여기서부터 올라 갈 줄 알지만 아니라구요. 이것이 거꿀잡이로 서 가지고 세계의 밑창을 뚫어 가지고 올라가야 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타락한 우리 인간은 한번 뒤집어져야 합니다. 뒤집어져야 하는 것이다. 여러분은 이것을 언제든지 생각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아벨의 자리에 섰다 하는 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하나님 대신 자각된 자리에 섰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나는 세계를 대표해 서 있다. 내가 만일에 요동하는 날에는 세계가 거꾸러진다’이러한 자각된 자리, 그 자리가 바로 아담이 서 있어야 할 자리요. 해와가 서 있어야 할 자리라구요. 그러면 그 자각된 자리에는 누구를 위해 서는 것이냐? 자기를 위해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주체되시는 하나님을 위해 서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망각하게 될 때는 아무리 세계를 위해서 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자기를 위해 서는 겁니다. 그러므로 ‘나 자신은 주체가 아니고 나는 상대적인 자리에 있는 존재로서 내 주체는 하나님이다' 라고 하며 돌아갈 수 있는 상대적인 입장에 서서 절대적인 마음을 가지고 나서야만 하나님의 복귀섭리 앞에 상대적 환경의 주체로서 혹은 대상으로 설 수 있는 것이 아니냐 하는 문제를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