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집: 장자복귀에 대하여 1969년 05월 25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21 Search Speeches

국가적인 기준-서 장자를 복귀해야 할 때

모세 때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에서 나와 40년간 광야 생활을 한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40년 광야 생활이 있는 것입니다. 해방후 24년이 지났으니, 앞으로 16년쯤이면 40년노정이 끝납니다. 이것이 3차 7년노정 기간인 21년이내에 다 끝나야 합니다. 앞으로 남은 2차, 3차 7년노정과 3년노정이 있기 때문에 16년과 맞아 떨어집니다. 그러므로 1960년대는 국가를 중심삼고 활동하는 시기였습니다. 이렇게 역사는 발전해 나왔습니다.

선생님이 1960년대를 중심삼고 생사를 결단해야 하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 통일교회의 여러분들을 중심삼고 생사를 결단해야 될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1968년부터 3년 기간입니다. 이 3년 기간에 남북한을 중심삼아 가지고 국가적인 기준에서 사탄을 굴복시키느냐 못 시키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세계 정세를 중심삼고 공산주의가 깔려 넘어가느냐 안 깔려 넘어가느냐를 판가리하는 싸움을 일으키는 분기점이라는 것입니다. 공산주의만 깔려 넘어가면 세계는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복귀되는 것입니다.

아직 우리나라는 장자의 입장이 못 되었습니다. 차자의 입장입니다. 정부도 이북보다 뒤에 세워졌고, 모든 것이 열세합니다. 그들에게 먼저 공격을 받았습니다. 지금 현실이 치면 맞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맞더라도 하나님을 붙들고 부모를 모시는 자리에서 맞아야 됩니다. 부모편이 되어 가지고 맞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른편 강도가 예수님을 붙들고 맞으며 조롱받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부모를 붙들고, 부모와 하나되어서 맞으면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래서 지금 통일교회가 이 민족과 국가를 대표하여 반공이념을 중심삼고 공산당을 물리칠 수 있다는 사실을 각성시키는 아벨적인 기준에 서야 합니다. 그리하여 대한민국을 중심삼아 가지고 복귀해 나가는 책임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여 국가기준을 넘어가고, 세계기준도 넘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신앙적인 기준과 사상적인 기준에서는 통일교회를 당할 자가 없습니다. 이념적 기준, 사상적 기준, 그리고 실천면에서는 아무도 통일교회를 못 당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는 통일교회가 앞서 있습니다. 그 실천도 자기를 위한 실천이 아니라 국가를 위한 실천입니다. 이런 면은 위정자들이 우리한테 배워야 합니다. 통일교회가 이런 면을 세워 가지고 지금 교차점을 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둘째번이 중요합니다. 생사를 판결할 때는 가만히 있다가는 망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의 부름을 받고 입교한 여러분 자신들이 대한민국 전체를 대해서 한 달을 일년으로 잡으면 일년이 12년 꼴이 되므로 한 달에 한 사람씩 전도하자는 것입니다. 일년을 중심삼고 열두 사람을 전도하면 예수님이 30세에 하신 것을 복귀할 수 있는 시대권내에 들어가게 됩니다. 예수님은 3년을 중심삼고 세 아들도 못 찾았잖아요? 우리에게 있어서 세 아들은 아담 시대, 예수님 시대, 재림 시대를 넘어갈 수 있는 조건이 됩니다. 그래서 일년에 한 사람이 최소한 세사람 이상씩 전도하라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장자는 타락한 사탄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기준(세 사람 이상 전도)을 통해 하나님을 중심삼고 탕감조건을 세워야 합니다. 그래서 이번에 선생님이 세계를 순회하면서 세계적인 4대국가를 중심삼은 가정주의 운동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했습니다. 대한민국을 중심으로 세계의 4대국가를 편성하여 가정주의 운동과 탕감기대 승리의 조건을 세워 가지고 종족 기준을 넘어서 사위기대를 세계적으로 복귀해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국가 운세와 더불어 세계 운세 앞에 우리가 일치해야 합니다. 한 가정의 부모가 되어 가지고 한 마음으로써 세계를 복귀하는 데 가담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1969년 6월 초하루부터 10월 말까지의 기도회에 다같이 동참해야 합니다. 이제부터 세계선교본부는 본부에서 유효원 협회장이 직접 관할할 것입니다. 왜 그런지 알겠어요? 그것은 세계적으로나 국가적으로 같은 제사를 드려 가지고 넘어가야 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