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6집: 우리의 수치 1973년 03월 11일, 미국 벨베디아수련소 Page #12 Search Speeches

도저히 용서받을 수 -" 입장- "- 있" 인간

여기 미국에서는 요즈음에 들어와서 남녀문제에 대해서 그렇게 문제시하지 않는 단계에 있을는지 모르지만, 동양으로 봐서는 용서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성경의 사상을 두고 보더라도 이것은 용서할 수 없는 사실이예요.

그러면 그러한 관점에서 생각할 때, 하나님이 그렇게 된 동기는 누구에게 있느냐? 결국은 천사장에게 있고, 종에게 있고, 사람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 아들딸이나, 혹은 종이 자신이 죄진 것을 알고, 나아가 '나야, 천번 만번 죽어도 마땅하고 부모 앞에 어떻게 얼굴 들고 용서를 받겠느냐? 나는 미리 없어져야 하고 망해야 하고 죽어 버려야 하는자다'라고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래도 불쌍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거예요. 그렇지만 지금까지 사탄은 참소를 해 나오고 있고, 또 인간은 지금까지 하나님을 배반해 나왔다 이거예요.

개인 개인에 대한 문제에 있어서의 죄는 개인들이 해결해 버리고 말지마는 사랑관계에 있어서의 문제는 반드시 삼각관계가 벌어진다는 거라구요. 예를 들어, 세상에서도 자기 아들 죽인 사람을 용서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참 선한 사람이고 좋은 사람으로 볼 수 있지마는, 자기 여편네를 빼앗아 간 사람을 용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미친 녀석이나 마찬가지라고요. 지금 미국에서는 어떻게 생각해요? 차라리 자기가 죽어 버리는것이 낫다는 거예요. 하나님과 사탄은 그런 관계라구요.

만일에 사탄이 해와 하나를 미워서 때려 죽였다고 합시다. 그랬을 때는 하나님은 해와를 또 지을 수 있다구요. 그러나 사랑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에…. 사랑은 처음 것이 좋습니다. 처음 것이 순전하고 최고예요. 그런데 처음 것이 이렇게 됐다면 그것은 다시 만들 수 없다고요. 사랑을 통해서 죄를 지었으면 그 아들딸은 전부 다 용서받을 수 없는 자리에 들어가고 만다는 거예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 인간은 이렇게 엉클어졌다구요. 죄의 부끄러움에 엉클어져 가지고 하나되어 떨어진 거라구요.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을 대해가지고 '하나님, 당신은 아담 해와가 타락한 후에 얼마나 부끄러움을 느꼈소? 얼마나 죄책감을 느꼈소?'라고 묻는다면, 하나님은 말 못할 입장에 설 수밖에 없다는 거라고요. 여러분 같아도 대답하기가 힘들거라구요. 만일 그렇게 묻는 사람이 있다면 눈물밖에 흘릴 수 없는 하나님이 아니겠느냐?뭐 용서해 주고 뭐 이러고저러고 변명할 수 없는 슬픈 하나님이 아닐 수 없다는 거예요.

하나님을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이 우리 사람이예요. 이러한 사람들이 잘 살아야 되겠어요, 못 살아야 되겠어요? 얼마나 잘 살아야 합니까? 그런 하나님이 아버지라면, 그 아버지를 위로해 드리기 위해서는 내가 무슨 일이라도 해서 위로할 수 있는 길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야 하는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암만울고불고 용서를 구하고, 암만 백번 죽는다 하더라도 바로잡을 수 있는 길이 있느냐? 바로잡을 수 없다구요. 그 아들딸은 하나님의 직계 아들딸의 입장에서 그렇게 됐다는 거예요. 죄가 없는 자리에서 그렇게 되었다구요.

그러면 오늘날의 우리들은 죄 없는 자리에서 살고 있어요?「아니요」아담 해와가 몇백 번 죽어서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것을 단행할 수 있다면 우리는 몇 번이나 그래야 돼요? 우리가 몇백 번 몇천 번, 몇만 번을 죽어서라도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 길을 택해야 되겠어요, 말아야 되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