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1집: 귀한 것과 좋은 것 1962년 12월 15일, 한국 전주교회 Page #183 Search Speeches

명령을 감당하고 책임지" 데서 발전이 벌어져

그럼, 나 하나 물어 봅시다. 오늘 선생님이 전주에 온다고 하니까 전주의 사방에서 몰려들었어요. `선생님이 서울에서 오신다는데, 또 무슨 말을 할까? ' 하고 들어 보기 위해서, 혹은 알아보기 위해서, 또 좀 더 알기 위해서, 여러 가지 모양으로 왔을 거예요. 그래서 뭘하기 위해서. 어떻게 되기 위해서? 좀더 좋아지기 위하여. 좋아하는 데는 선생님을 좋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예요, 내 자신이 좋아지기 위하여. 내 자신에 무엇을 보충하기 위해서 온 거예요.

그러면 이와 같은 자리나 혹은 말씀을 나누는 입장에 설 때에, 말씀을 주게 되면 받는 그 자신이 책임을 질 수 있느냐? 이 말씀을 감당해 낼 수 있느냐? '감당해 낼 수 있고 말고! 책임을 질 수 있고 말고!' 할때는 지금 하는 말씀 이상의 말씀도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런 사람에게 더 줄 수 있는 길이 열리기 때문에 그 사람은 반드시 발전하는 것이요, 그런 사람은 반드시 더 큰 선의 위치를 찾아 나가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당장 문제는 뭐냐 하면, 여러분이 감당하고 책임을 질 수있는 사람이 되어야 된다 이거예요. 그저 자기 위치를 떠나 가지고 함부로 덤벼서는 안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응? 「예」

타락이 무엇이뇨? 책임을 못 진 거예요. 감당해 내지 못한 거예요. 하나님이 따먹지 말라고 한 그 명령에 책임을 못 했고 감당해 내지 못한 거예요. 구원을 받고 못 받는 것은 어디서 벌어지느냐? 상대적인 선의 세계가 나와는 하등 관계없는 거예요. 결국은 내가 그것을 책임지고 감당해 낼 수 있는 내 자체의 선을 이루느냐, 못 이루느냐에 달려 있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사람의 마음을 분석해 볼 때 두 가지 작용이 있습니다. 하나는 받고 싶은 작용이요, 하나는 주고 싶은 작용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그런 거예요. `나'라는 존재를 가만히 분석해 보면, 사람에게는 받고 싶은 마음과 주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거예요. 조는 녀석은 깨우라구요. 너 어디서 왔나? 어디서 왔나? 「김제에서 왔습니다」 김제, 가까운 데서 온처녀들이 졸고 있구만.

선생님이 지금 얘기하는 것을 악을 쓰면서 얘기하는 거예요. 정말이예요. 책임이 있잖아요. 수많은 사람이 오라고 해서 왔는데, 왔다가 돌아갈 때에는 올 때보다 못해 가지고는 안 되겠다구요, 올 적보다 조금 나아져야지요. 나아지는 데는 선생님이 나아지는 것이 아니예요. 여러분들이 내적인 바탕에 있어서 나을 수 있는 인연을 맺어 놓아야 그것이 자기 것으로 남아지는 거예요. 싸움이라는 거예요. 싸움하는 시간이예요. 여러분들과 나와 싸움하는 시간이예요.

나는 책임을 져야 되겠고, 나는 감당해 내는 입장에 있어야돼요. 그렇지 않으면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아요. 되는 대로, 그저 가는 대로 그렇게 시간만 보내다가 돌려보내는 그게 아닙니다. 책임을 져야돼요. 오라고 했으면, 백리 길을 걸어오라고 했으면 백리 길 걸어온 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돼요. 사방에서 수많은 사람이 여기에 몰려들었으면, 이 수백 명의 사람들의 노력과 이들의 마음으로 다 생각하던 천태만상의 곡절이 많을 거예요. 심선상(心線上)에 이루어졌던 내용이 있을 것입니다. 그 모든 내용 위에 한 점이라도 좋은 점을 첨부해 주고 가야 선생님으로서 왔다 가는 책임을 다하는 거예요.

또 여러분들로 그래요. 그런 선생님에 대해서 여러분들도 역시 그런 입장에 서서 자기 자신의 내용에 있어서 선을 이룰 수 있는 바탕을 가져 가지고, 그것이 상대적으로 기쁠 수 있는 하나의 인연으로서 좋다는 결정을 지어 놓고 돌아가야만, 여러분이 어디 가든지 그 좋은 기분을 빼앗기지 않는다는 거예요. 한번 자리잡았던 좋은 기분을 빼앗기지 않아야 여러분은 통일교회가 가는 길을 갈 수 있는 거예요.

타락도 자체 내의 양심을 중심삼고 바라고 있는 그 귀한 내적 인격관을 무시한 데서부터 시작된 거예요. 반드시 양심의 작용은 높아지려고 하는 거예요. 높아지려고 하는 것이 원칙인데, 높아지는 데는 법도를 따라서, 자기 의무와 자기 책임과 자기의 사명을 완수하는 데서만이 좋은 것이 관계를 맺습니다. 의무와 책임을 완수하지 못하는 데에는 좋은 것이 있을 수 없다는 거예요. 세상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일단 여기 왔으니, 온 만큼 온 데 대한 책임을 져야 되고, 여기 온 여러분에게 무슨 말씀을 하더라도 감당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러려면 그 자체 내에 있어서 스스로 좋은 것을 받아 들일 수 있는 본바탕이라도 가져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다 흘러가 버린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졸음이 깼어요?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