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집: 그리운 에덴 1959년 06월 28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346 Search Speeches

하나님과 만물이 그리워하" 참다운 사람

예수님은 원수를 대하여 복을 빌었습니다. 양손 양발에 못을 박고 머리에 가시관을 씌우는 그들을 대하여 복을 빌었습니다.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는 무모한 원수들을 대하여 복을 빌었습니다. 왜 그랬느냐. 그것은 아버지께서 최대의 정력을 기울이시고 심중에 애절한 사정을 거치신 수고의 결과로 지어진 사람이라는 사실을 잘 아시기 때문에 복을 빌 수 있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하늘의 사정을 지니고 오신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비록 원수로부터 반대받는 입장에 있었지만 하늘의 본연의 심정을 더듬어 볼 때, 하나님께서 온갖 정력을 다 기울여 지었다는 인연이 있는 인간이었기에 그들 대하여 복을 빌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30여년의 생애를 거치시면서 명상이나 혹은 상상 속에서 하나님과 완전한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본연의 참사람이었습니다, 본연의 참사람. 이는 만물이 그리워할 수 있는 사람인 동시에 하나님이 그리워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날 인간도 자기가 만드는 물건을 대하여 오늘 짓다가 끝나지 않으면 내일 또 가서 그 뒷일을 계속하여 완전히 마무리짓고자 하거든, 하나님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을 지어 놓고 얼마나 기뻐하셨는 지, 그 심정세계에 들어가서 체휼한 사람이 있다면, 그가 춤을 춘다면 몇 십년이라도 추고 싶어할 것입니다.

오늘날 신앙자들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한 법칙의 가치를 통하여 나타나는 인간이라면 그런 인간은 필요없습니다. 이는 법칙으로 잴 수 없는 무한한 신축성을 가진 절대적인 원칙을 통하여 지어진 사람이었기에 그 가치가 크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들여다 보니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전체의 속성을 느낄 수 있고, 만우주 전체의 감정이 흐르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을 바라보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는 무한히 기뻤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라보시고 기뻐하시던 아담 해와, 하나님이 그리워하시던 아담 해와, 더 나아가서는 만물도 주인이 되어 주기를 고대하고 바라던 아담 해와, 이처럼 하나님이 그리워하였고 만물이 그리워하였던 아담 해와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타락으로 말미암아 그리움이 변하여 저주와 원망이 되고, 행복과 소망이 변하여 탄식과 절망이 되고, 생명이 변하여 사망이 되고, 사랑이 변하여 통곡이 되었다는 사실은 기막힌 일입니다.

이러한 한스러운 조상을 모시고 있다는 사실을 놓고 말할 수 없이 한탄해야 할 입장에 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들 가운데는 이 한스러운 사실이 어디서부터 출발하여 오늘날 우리와 관계를 맺고 있는 지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박차고, 한스러운 심정을 쓸어 버리고 인간 본연의 심정을 찾고 나서 환희하고, 그 환희의 음성을 높이는 무리는 이 땅 위에 없을 것인가, 하늘은 찾을 것입니다.

이런 심정 문제에서, 하늘이 그리워할 수 있고 만물이 그리워할 수 있는 가치적인 사림이 오늘 요모양 요꼴이 되었으니, 심판을 받아야 된다는 거예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버지시여! 제가 심판을 피하고자 할진대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심정의 합격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에덴이 아담 해와를 지어 놓고 즐거워하시던 마음, 가 보고 싶고 만나 보고 싶은 그 마음, 그 심정에 합격됨으로써 심판을 피하여 노래할 수 있는 하나의 승리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고 기도해야 됩니다. 하늘은 그러기를 바라고 있어요.

천륜을 그리워할 줄 아는 내 자신이 되는 동시에 사람이 그리워지는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심정을 체휼하게 하기 위하여 일남 일녀를 지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은사인가를 여러분은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땅 위에 남성이 있고 여성이 있다 할진대, 그들은 하나님의 전체적인 성품과 성상을 대신해서 세워진 존재인 것입니다. 따라서 한 여자를 사랑할 줄 아는 남자가 되어야 하고 한 남자를 사랑할 줄 아는 여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통하여 아담이 바라던 기준의 심정과 해와가 바라던 기준의 심정을 지닌 자들로서, 자유를 누리며 하늘을 포옹할 수 있는 부부가 땅 위에 있다면 그들에게 온 우주를 넘겨 주고 안식하겠다는 것이 하늘의 뜻임을 오늘날 인간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인간은 이런 심정의 법도를 유린하였기 때문에 오늘날 심정의 세계에서 무한한 그리움에 허덕이게 된 것입니다. 어떠한 취미를 갖고 예술을 통하여, 학문을 통하여, 또는 땅 위에 있는 어떠한 사랑의 대상을 통하여 이 그리움을 메우려 하지만 메울 길이 없어 허덕여야 하는 것이 타락한 인류의 실상입니다. 이것이 역사적인 비애요 비극인 것입니다.

이러한 그리움이 여러분의 마음에 솟구쳐 오른다 할진대, 본연의 동산을 그리워한 만물과 더불어 그 본연의 동산을 그리워할 줄 알고, 본연의 심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이끌고 있던 본연의 사람 형태를 갖추어 하늘을 그리워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사람이 되면 하나님은 쌍수를 들어 '오냐 내 아들아, 내 딸아' 하면서 붙잡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