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집: 아버지와 나 1967년 10월 01일, 한국 구진봉 성지 (서울 북악산) Page #341 Search Speeches

마음과 뜻과 성'을 다하" 충신과 효자가 되자

타락은 외적인 것이 아니다. 아버지와의 심정적인 내적 인연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인간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잃어버린 내적 심정을 다시 복귀한 터 위에서 하나님을 위로해 드리고 내 자신이 그 기준 위에 서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최종적인 섭리인 것이다. 그러므로 복귀섭리는 이 길에 반대되는 모든 것을 헤치며 나온 것이다. 하나님의 심정을 잃어버렸기에 이것을 복귀하기 위해 우리는 신앙길을 가야 한다. 그러나 이 복귀의 길은 심정세계에서는 한없이 가까우나 심정세계를 벗어났기에 한없이 먼 거리에 있는 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거리를 단축시키기 위해 역사상의 많은 선열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희생해 나왔던 사실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선조들이 희생하고 간 복귀섭리의 전체를 수습하여 연결짓는 날이 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이 마음과 뜻과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바라오셨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남아 있으면 뜻을 이룰 수 없기에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고 하셨다.

인간이 영계와 하늘과 땅을 대신하는 개체가 되어야 새역사의 기점을 이룩할 수 있는 것이다. 고로 선열의 애혼(哀魂)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런 기준을 중심하고 내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 가를 생각해 봐야 된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효자 효녀 충신이 되기를 바라고 계신다. 또한 하나님은 그중에서도 최상의 기준에 있는 사람을 원하고 계신다. 충효하는 길밖에 없다는 사람을 하나님은 바라고 계시는 것이다.

역사노정의 그 누구보다도 높은 위치를 차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아벨의 심정기준, 노아의 120년 정성 등, 역사노정의 그 누구보다 앞선 입장에 여러분이 서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님에 대한 충효의 기준은 역사를 초월하는 것이다.

나는 틀림없이 하나님의 아들딸이라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 잘 싸우는 것보다도 사랑받을 수 있는 자신이 되었는가 하는 것이 문제이다. 바로 그 대표적 인물이 예수님이시다. 그분은 역사적인 결실체이다. 예수님은 모든 일을 심정을 중심하고 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역사적 부활의 실체가 되어야 한다. 그런 나로서 하나님 앞에 나서야 하는 것이다.

이 길을 재개척해 나온 것이 선생님이 걸어온 30여 년의 길이다. 하나님의 심정을 위로해 드리며 나온 길이다. 이 목적을 위해 모인 무리가 바로 통일의 무리인 것이다.

이제 7년노정 마지막 해의 3분의 2가 지났다. 그동안 많은 역경을 거쳐 나왔다. 집을 버리면서까지 하나님의 뜻을 위해 일을 한 것도 예수님의 모습을 본받기 위한 것이었다.

현재 여러분이 처한 자리는 하늘과 땅이 원하는 자리가 아니다. 여러분은 부모가 원하는 효자가 되어야 한다. 하늘을 대하여 마음과 뜻과 성품을 다해서 충성을 해야 한다. 효자 충신은 마음, 뜻, 성품을 다하는 존재다. 그러한 입장이 하나님이 공인하는 기준이다. 그런 자리에 있지 못하면서 그 자리에 있는 것같이 대해 주기를 원하는 것처럼 불효는 없다.

타락 전 아담의 심정 기준을 넘어서야 한다. 자신은 하나님이 원하는 입장에 서지 못하면서 그 이상의 것을 원하는 것처럼 큰 불효는 없다.

부모의 생명과 재산을 책임지고 가정에 평화와 발전을 가져오지 못하는 자는 효자가 될 수 없다. 부모의 재산이 무너질 때는 자기의 모든 것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창조이상이 파탄되었으니 생명, 재산, 평화, 이상을 유린하는 자리에서는 충신 효자가 될 수 없다. 내가 언제 하나님을 위해 내 일같이 안타까워 했으며, 내가 언제 아버지의 생명에 대해 위업을 느꼈으며, 내가 언제 아버지 가정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몸부림치며 싸워 보았느냐? 하느라고 했지만 그것이 하나님 앞에 충효가 되지 못하고 불충 불효가 되었던 것이다.

개인의 것은 교회의 것, 교회의 것은 국가의 것으로 생각해야 하며, 국가의 것이 바로 세계와 천주, 그리고 하나님의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것만을 생각하는 무리가 많아지는 경향이 있다. 지금까지 역사노정에 자기 것과 자기를 주장했던 사람치고 충신이 된 사람이 하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