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집: 하늘편의 내적 슬픔 1970년 03월 29일, 한국 통일산업 (구리시 수택리) Page #255 Search Speeches

보다 큰 목적을 이루기 위해

그러한 마음이 앞서 가지고 죽음길을 넘어간 그 사람들은 틀림없이 아버지의 나라에 가 가지고 하늘편의 중심이 될 수 있을 것이로되 자기 개인이 구원받기 위하여, 또는 자기 가족을 구원해 주기 위하여 죽어간 희생자나 순교자는 개인권내나 가정권내밖에 머물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개인을 찾는 것보다도 하나님의 나라를 찾기 위한 것이요, 개인을 사랑하는 것보다도 하늘이 종족을 사랑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하나님은 지금까지 역사를 소모시키면서 나오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나라를 위하고 그 백성을 위하여 온갖 충성을 다하는 입장에서 하늘의 뜻을 대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지금까지 고대해 나오셨던 것입니다. 자기 개인의 구원과 가정의 행복을 위한 목적으로 하나님 앞에 나서는 사람들은 도리어 하나님 앞에 이중적인 십자가, 이중적인 고역, 이중적인 슬픔을 가져다 주는 입장에 서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지금까지의 종교를 믿었던 사람들은 내가 구원받고 내 일족이 잘되기 위해서 믿었던 것입니다. 야곱을 중심삼고 보더라도 하나님이 그에게 축복을 한 것은 이스라엘의 선민권을 만들기 위해서 축복하였지만 그 보다도 자기 족속을 위한 축복으로 알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 하여 하나님을 자기 종족을 중심삼고 축복해 주는 분으로 생각했던 것을 우리는 성서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자기의 민족보다도 자기의 대를 직접 이을 수 있는 자를 더 사랑했다는 사실을 우리가 생각하게 될 때, 나라를 사랑하는 것보다도 자기의 족속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것보다도 개인을 사랑하는 민족에게는 민족적인 수난의 길이 남아지게 되는 것이요, 국가적인 수난의 길도 남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실패의 역사를 거듭한 것은 그 종족이 단결하지 않아서 실패한 것이 아닙니다. 그 종족에게는 민족을 중심삼고 하나로 단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뜻을 중심삼고 민족이 하나되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는데, 종족을 중심삼고 하나된 것으로써 민족의 복을 받겠다고 하며 나서게 되면 민족을 중심삼고 넘어야 할 그 기준이 도리어 장벽이 되고, 시련과 고통의 원인이 될 수 밖에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하면 탕감시켜야 할 조건이 이들 앞에 남아 있기 때문에 이 탕감조건을 세우기 전에는 민족을 중심삼은 고개를 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민족을 중심삼고 고개를 넘었다고 하더라도 민족보다도 국가를 더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 가지고는 국가의 기준을 넘을 수 없습니다. 국가를 사랑하는 마음보다도 세계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 강하지 않고는 세계의 주도권을 가질 수 없습니다. 세계의 주도권을 갖기 위해서는 국가보다 세계를 더 사랑했다는 공적인 터전을 쌓아서 그것을 인정받아 주체적 국가의 자리를 차지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기 전까지는 세계적인 탕감의 노정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지금까지 종교를 믿고 나온 목적은 개인이 복을 받기 위해서였습니다. 자기 일족이 복을 받기 위해서였습니다. 자기 종족이면 종족, 문중이면 문중이 복을 받기 위해서 종교를 믿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본래의 뜻과는 너무도 배치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민족을 찾는 것은 국가를 위한 것이요, 종족을 찾는 것은 민족을 위한 것이요, 가정을 찾는 것은 종족을 위한 것이요, 개인을 찾는 것은 가정을 위한 것입니다. 더 큰 목적을 앞에 놓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은 역사적 과정을 통하여 섭리의 판도를 넓혀 나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나안을 향하여 복귀노정을 걷던 이스라엘 민족이 생각해야 했던 것은 민족이 당하는 수난의 길보다도 앞으로 다가올 국가가 당해야 할 수난의 길을 염려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민족이 당하고 있는 수난을 응당히 당해야 할 것으로 감수했더라면 민족의 수난의 길을 넘어서 국가를 중심삼아 가지고 원수와 부딪쳐 싸워 국가적인 수난을 해결 지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러지 못했기에 원수를 보지도 못한 채 광야에서 쓰러져 간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