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6집: 천국은 나로부터(2) 1971년 07월 25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79 Search Speeches

자기를 부정하"데서부터 천국이 이루어져

이런 관점에서 선생님 자신도 오늘날 통일교회에 대해서 염려하지 않을 수 없는 거라구요. 뜻이 동기가 되느냐, 내가 동기가 되느냐? 내가 동기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번번히 뜻을 뒤에 두고 자신을 동기로 할 때가 많은 것이 오늘의 인간들입니다. 뜻은 수난길을 요구하고 있는데 '나'라는 것은 그것을 배반하려고 합니다. 상반된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뜻은 오른편으로 가라 하는데 나는 왼편으로 가려고 합니다. '내가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누구만큼 고생을 못 했느냐? 하는 조건을 제시해 가지고 자기를 해명하려고 합니다.

자기를 해명하려고 하는 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절대적인 신앙이라는 것은 자기를 해명하는 자리가 아니라구요. 해명당하는 입장에 서야 됩니다. 거기에는 일언반구, 어떠한 제시의 내용이 없습니다. 해명 당하는 입장이라구요. 잘했어도 잘했다고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내가 백퍼센트 인정할 수 있는 것이라 해도 하나님이 볼 때는 하나입니다. 내가 백으로 인정하는 것이 하나님에게는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중심삼고 제시하는 입장에서는 찾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천국은 어디서부터 시작하느냐? 절대적인 신앙을 기점으로 해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신앙이라는 것은 자기를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자리는 자기를 절대 부정하는 자리입니다. 자기를 절대적으로 부정하는 자리에 서지 않고는 절대적인 신앙이 나올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세상만사를 중심삼고 거기에 긍정하면서 신앙길을 간다고 할 때 절대적인 신앙이 나올 것 같아요?

이러한 근본 문제를 놓고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을 보게 되면 하루의 생활권내에서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먹고 하는 습관적인 생활을 하면서도 '나는 하나님을 대해서 당당하다'고 합니다. 그렇게 믿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천국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당당할 수 없다구요. 나를 공인하는 어떤 상대적인 요인이 없어 가지고는 절대적 신앙기준도 못 갖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신앙기준도 갖지 못했는데 절대적 신앙기준을 극복하고 난 후에야 이뤄질 천국이 성사될 수 있겠어요? 어림없습니다. 왜 그러냐? 그 자리에는 사탄이 머물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생명의 동기는 하늘로부터입니다. 욕망의 동기도 하늘로부터지만 사탄과 더불어 짝하고 있습니다. 얼룩덜룩하다는 겁니다. 흰 것보다 검은 것이 많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척 신앙길은 자기의 어떠한 관념을 중심삼아 가지고 찾아갈 수 있는 길이 아닙니다.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원리를 안다는 사람들, 혹은 여기 부장이나 간부들이 원리를 놓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원리 강의해 가지고 감동을 주는 입장에 있다고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말하기는 누구나 쉽습니다. 그렇지만 실천은 어려운 것입니다. 말이 나오기까지 그 배후의 고(高)와 깊이가 어떻드냐? 그것은 여러분 나름의 기준을 중심삼고서는 헤아리지 못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감정과 일상의 처신을 두고 볼 때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느냐? 자기라는 것을 언제나 세워 나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신앙세계에 있어서 제일….

예수님이 십자가를 안에 놓고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나에게서 피하게 하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 라고 기도할 때, 자신만만하고 당당한 자리에서 기도하지 않았어요.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라고 한 것은 예수가 이제 한번 가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운명인 것을 알면서도 인간을 대표하여 사정이라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응당히 안 될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런 기도를 했습니다. 여기서 만일 예수가 자기에게 처한 자리를 피하기 위해서 그런 기도를 하였다면 그는 메시아가 될 자격이 없습니다. 그렇게 가야 할 길임을 알면서도 피해 가야 할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체면을 무릅쓰고 그런 기도를 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신 이후 십자가 노정을 따라오는 인류 앞에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겠느냐? 그런 것을 대표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아들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입장에서, 불효자와 죄인의 칭호를 받으면서 아버지를 도운 아들의 권한을 세우기 위하여 그렇게 기도한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예수는 고마운 분입니다. 만일 예수가 자기 개인을 중심삼고 죽음이 무서워 그런 기도를 했다면 이는 만민을 위한 완전한 제물이 될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삭만도 못하다는 겁니다.

이삭은 자기 아버지가 자기를 데려다가 꽁꽁 묶어 가지고 제단에 올려 놓고 칼로 찔러 죽이려 했을 때 묵묵히 있었습니다. 죽음의 자리에 나가기 전부터 하나님 앞에 자기의 사정을 무시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할 때 불평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언제나 부족하기 때문에 그런 자리에 서 가지고는 하나님을 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재창조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문제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