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3집: 섭리사적 회고와 성약시대 1993년 01월 03일, 한국 본부교회 Page #119 Search Speeches

사탄세계의 사'의 기준 이상을 넘어서자

평범한 세계의 진리가 필요한 것입니다. 대중이 필요한 진리는 뭐냐 하면 사랑입니다. 그렇지요?「예.」밥은 안 먹어도 사랑은 찾아가야 됩니다. 남자 여자가 다 그렇지요?「예.」(웃음) 사랑의 중요한 낚싯밥을 내가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낚싯밥에 와서 물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의 문총재를 아는 사람은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한번 낚싯밥에 걸리기만 하면 남자나 여자나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죽도록 고생하면서도 따라가는 겁니다. 선생님도 하나님 앞에 걸려 있습니다. 참사랑의 낚싯바늘에 딱, 걸렸습니다. 하나님이 이것을 감으면 그대로 올라가는데, 나중에는 하나님이 문총재를 붙잡아 가지고 붙안고 좋다고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지금 그 낚싯줄을 감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세계 꼭대기에 다 올라왔지요?「예.」다 올라왔습니다. 내 위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난다긴다하는 사람들, 수상을 해먹고 대통령을 해먹은 사람들도 내 얘기를 들으면 30분 이내에 돌아갑니다. 내 말을 듣지 않으면 자기들이 해먹을 게 없다구요. 나는 30년을 더 얘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선생 중의 선생이라는 거지요?「예.」'자화자찬(自畵自讚)하누만!' 할지 모르지만 세상이 그렇다고 하니까 그런 얘기를 하는 거예요. 옛날에는 욕을 먹고도 가만히 있지 않았느냐 이거예요.

하나님이 힘으로 때려잡으려고 했다면, 세상을 일주일 이내에 복귀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못 하느냐? 사랑의 세계를 빼앗겨서 거짓사랑이 되었기 때문에, 거짓사랑 이상의 길을 가지 않으면 인수할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누구보다도 나를 더 사랑해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 말은 내가 너희를 누구보다도 더 사랑하기 때문에 너희는 나를 누구보다 더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세계의 사랑의 기준을 넘어서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안 되기 때문에 그런 교훈의 말을 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가 더 높은 사랑의 어버이의 자리에 있다고 하는 논리를 세우더라도 누가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거 이해가 돼요? 성경을 보면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이렇게 역설적인 논리가 어디에 있어요? 이 말은 사탄편에서 살겠다고 하는 사람은 죽는 것이요, 하늘편에서 살고자 하는 사람은 사탄세계에서 반드시 죽을 각오를 해야 된다는 거예요. 180도 반대의 사람들이 전부가 개인으로 치고, 나라로 치고, 세계로 치는 것입니다. 구원섭리를 통해서 볼 때, 역사이래 종교적인 종주(宗主)로서 개인·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 전체가 합해 가지고 핍박한 대표의 왕자, 왕초가 여기에 서 있는 문총재라는 것입니다.

지금 미국, 러시아, 중국의 큰 나라들이 전부 다 나를 문제시하고 있습니다. 일본도 내가 들어가게 되면 6개월이면 다 말아먹는다고 생각하고 있고, 미국도 지금 나 때문에 걱정을 많이 합니다. 그러다가 소련이 나를 모셔 갈 수 있는 단계에 들어오니까 '아이구, 안 됩니다. 소련이 문총재를 모시고 하나되면 우리 미국이 큰일납니다. 제발 가지 마십시오!' 그러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가 그런 것을 다 모르고 있지요? 잘났다는 사람들은 얼마나 잘났나 보자구요. 또, 나를 못났다고 하는 사람은 내가 얼마나 못났는지 보라는 것입니다. 이게 맞는 말 같아요, 문총재가 지어서 하는 말 같아요?「맞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사생아인데다 형편없습니다. 요셉과 마리아 사이에 아들딸이 또 태어났습니다. 예수님에게 형제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초막절에 동생들이 그렇게 말했지요? '형님이 주님이라면 예루살렘에 가면 모든 난다긴다하는 사람들과 친구가 되지 왜 이런 촌에 박혀 있소?' 하고 비난했습니다.

보라구요. 예수가 열두 살 때 마리아하고 요셉이 예루살렘의 성전에 데려갔다가 예수를 그 성전에 남겨 놓고 사흘 동안 걸어서 고향에 돌아왔는데 보니까 예수님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흘 동안에 다시 돌아가서 예루살렘에 찾아가니 예수님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마리아가 '예수야, 너는 왜 여기에 있느냐?' 하고 물었습니다. 그때 예수가 뭐라고 했어요? '내가 아버지의 집에 있는 것을 알지 못했느뇨?' 하고 들이 제긴 것입니다. 열두 살짜리 자기 아들을 성전에 남겨 두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흘 동안에 예수를 남겨 놓았다는 사실을 모르고 갔겠어요, 알면서도 갔겠어요?「알면서도 갔습니다.」

알면서 왜 그렇게 한 줄 알아요? 예수님 때문에 마리아하고 요셉이 싸웠다는 것입니다. 그거 이해가 되지요? 그러니 예수가 '내가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것을 알지 못했느뇨?' 한 것입니다. 그게 뭐냐하면, 어머니 아버지로서 사흘 후에야 와서 무슨 수작이냐 그 말이라구요. 그런 성경 해석을 들어 봤어요? 그거 이치에 맞는 말이에요, 안 맞는 말이에요?「맞는 말입니다.」

마리아의 친척인 가나의 혼인 잔치집에서는 마리아가 뭐라고 했는지 보라구요. 예수님이 돌아다니면서 이적 기사를 행한다고 하고 죽은 사람도 살리고 무엇이든 다 만들 줄 안다고 소문도 나고 하니까 뭐라고 했어요? 예수님도 배가 고프니까 잔칫집에 밥을 얻어먹으러 갔습니다. 그럴 게 아니예요? 돌아다니다가 배가 고프면 잔칫집을 찾아가겠어요, 안 찾아가겠어요? 예수라고 모래를 먹고 살았겠어요, 자갈돌을 주워 먹고 살았겠어요? 공적인 길을 나선 서른이 넘은 더벅머리 총각에게 누가 식사 때마다 밥을 찾아 주었겠어요?

그러니까 잔칫집에 밥을 얻어먹고 떡을 얻어먹으려고 갔을 게 아니냐는 겁니다. 잔치를 하면 거지들이 떡을 얻어먹으려고 오잖아요? 예수님도 배가 고파서 들어온 것이니 거지는 아니지만 거지 사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웃음) 이래 가지고 예수가 왔는데, 잔치집에 술이 마침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마리아가 생각하기를 '이 녀석이 돌아다니면서 이적 기사를 행한다고 들었는데, 술이나 좀 대주었으면 좋겠다.' 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한테 가 가지고 '예수야, 여기에 술이 떨어졌으니 술을 한번 만들어 보아라!' 했습니다.

그때 예수가 뭐라고 했느냐 하면, '여인이여! 너와 내가 무슨 상관이 있느냐?'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에! 자기의 어머니를 대해서 '여인이여, 너와 내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라니, 그게 무슨 말이냐? 자기의 친척 가운데 30대도 아니고 20대 약간 넘은 사람의 혼인잔치에 가서 축하하고 있는 어미꼴을 좀 보라는 것입니다. 더벅머리 총각인 예수는 30이 넘도록 장가 보낼 생각을 한 번이라도 했느냐 이것입니다. 그러니 화가 나겠어요, 안 나겠어요? 예수님이 말을 잘했어요, 잘못 했어요?

'여인이여, 너와 내가 무슨 상관이 있느냐?' 이것은 무슨 말이냐? 자기 아들은 30이 넘도록 장가 보낼 생각도 안 하면서 동생뻘이 되는 친척 결혼 잔치에 와 가지고 무슨 수작하느냐 그 말입니다. 성경을 그렇게 해석해야 되는 것입니다. 문총재의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안 맞는 것 같아요?「맞습니다.」무슨 세속적인 개념이 있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들 편리한 대로 수작들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누구의 말이 맞나, 하늘나라에 가 보라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