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6집: 하나님과 우리 인간 1972년 05월 14일, 한국 통일동산 (구리시 교문동) Page #142 Search Speeches

인간의 최고의 욕망

하나님 앞에 최고의 걸작품으로 지은 사람이 하나님의 상대라면, 상대적인 입장에 서기를 바라는 것이 인간이라면 하나님은 그 인간이 무엇이 되기를 바랄 것이냐? 하나님의 완전한 상대가 되기를 바랄 것이냐, 완전치 않은 상대가 되기를 바랄 것이냐? 두말할 것 없이 완전한 상대가 되길 바랄 것입니다. 그러면 완전한 상대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완전한 하나님이 있어 가지고 완전한 사랑을 갖고 있으면 그 하나님도 내 것 만들고 완전한 사랑까지도 내 것 만들 것을 바랄 것입니다. 그건 두말할 것 없는 것입니다.

대상이라는 존재는 반드시 그 주체를 자기 소유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요, 그 주체 내에 보다 귀한 그 무엇이 있다면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대상의 욕망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완전히 하나될 수 있는 길이 생겨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주체와 대상이 제일 귀한 것을 내 것 만들려고 하는 그런 힘의 작용을 하기 때문에, 완전히 내 것 만들어질 수 있는 자리만 결속하게 되면 갈라질 수 있는 길이 생겨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완전히 통일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 하나님 앞에 상대적 존재로 지음받은 인간은 무엇을 바랄 것이냐? 절대적인 하나님을 내 것 만들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소유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욕망입니다. 인간이 바라는 최고의 욕망은 하나님을 내 것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대상이 바라는 최고의 소망은 주체를 내 것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인간이 하나님 앞에 상대적 입장으로 지음을 받았다면, 인간으로서의 욕망이 뭐냐 하면 하나님을 내 것 만든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보편적인 욕망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남자에게만 적용되고 여자에게는 적용이 안 된다고 한다면, 그 하나님은 남자만을 위한 하나님이지 여자를 위한 하나님이 아닙니다. 남자나 여자나,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이것을 바라는 소원의 기준 앞에는 전부 다 통일인 것입니다.

유치원을 다니는 학생에게도 '너. 조그만 것 좋아하니, 큰 것 좋아하니?' 하면, '큰 것, 큰 것'이라고 말한다구요. 둘을 딱 보여 주면서 작은 것을 네가 가지라고 하면 싫다고 하는 겁니다. 전부 다 큰 것을 원하는 것입니다. 또, 큰 것을 갖고 있는데, 그보다 더 큰 것이 있으면 '아, 나 이거 싫어! 더, 큰 것….' 그럽니다. 또, 그보다 더 큰 것을 갖다 놓고 '너 어느것 가질래?' 하면, 더 큰 것으로 바꿔 가지려고 합니다. 이렇게 큰 것, 큰 것을 찾아 올라가면 어디까지 올라가느냐? 우주의 절대자, 천상천하에 한 분밖에 없는 절대자가 있으면 인간은 그 절대자를 내 것 만들려고 합니다. 이러한 욕망이 인간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욕망을 누가 갖다 넣어 놓았느냐? 여러분의 어머니 아버지가 갖다 넣어 놓았어요? 아니라구요. 모르긴 하지만 그런 욕망은 동서양의 어떤 민족을 초월해 가지고, 수많은 인류를 초월해 가지고 역사시대에 태어난 그 누구라도 이러한 공통적인 욕망은 다 갖고 있기 마련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건 왜 그러냐? 인간은 절대적인 상대적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상대적 존재는 절대적인 주체를 추구하지 않으면, 그 주체를 소유하지 않으면 영원히 존속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주체를 추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에게는 최고의 것을 소유하려는 소유욕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만약에 하나님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면, 하나님을 나의 소유로 만들었다 하면, 무엇을 소유했어요? 몸뚱이를 점령했다고 해서 그것을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구요.

아무리 서로 의가 좋고 행복하다고 하는 부부가 있더라도 남편은 아내를 대하여, 아내는 남편을 대하여 서로가 '나는 당신의 몸뚱이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까 행복하다'고 하는 사람 있어요? 몸은 물론이요, 그가 가진 것도 물론이요, 속속들이 깊은 가운데 있는 단 하나밖에 없는 사랑까지도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자리에 도달해야만, 그때서야 비로소 두 사람이 모두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당신 행복하지?' 하면 '예. 행복합니다'라고 하는 겁니다.

만약에 한쪽만 그럴 수 있는 자리에 선다면 행복은 성립 안 되는 것입니다. 둘 다 같은 자리에서 나는 상대의 사랑을, 상대는 주체의 사랑을 서로서로가 점령했다고 하는 자리, 서로서로가 공동적으로 '그 사랑은 내것이야'라고 할 수 있는 자리에 나서게 될 때에 그 둘은 행복한 것입니다. 이것이 주체와 대상이 작용하는 목적이라는 것을 우리는 헤아려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생각해 볼 때, 하나님의 우리 인간과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만 점령한다고 해서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점령했더라도 하나님 속에 하나밖에 없는 사랑을 점령하지 못하게 될 때는 완전한 행복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보게 된다면 하나님의 백성도 될 수 있고, 하나님의 사랑하는 교회의 교인도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하나님이 사랑하는 교인 가운데는 하나님이 제일 사랑하는 종도 있을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백성이 될 거야, 교인이 될 거야, 종이 될 거야? 하면, 점점 덜 가치 있는 것은 다 집어 던지는 거라구요. 종이 될 거예요, 교인이 될 거예요? 오늘날 기성교회에서는 하나님의 종이라고 하는데. 종 중의 종이 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양자와 종이 있다고 하면 양자가 될 거야, 종이 될 거야 하면 '나 종이 되겠다' 하는 사람은 내 눈으로는 못 봤다구요. 아무리 못난 사람이라도 '거 물어 볼 게 뭐야? 종보다 양자가 되지'라고 합니다. 그리고 양자와 직계 아들을 놓고 볼 때, '양자가 될 거야, 직계 아들딸이 될 거야?' 하고 묻는다면 '거 물어 볼 게 어디 있어? 직계 아들딸이 되지' 한다는 것입니다.

그 주체가 무한한 가치를 지닌 절대적인 하나님이라 하더라도, 그 상대적인 입장에서 하나님을 대하는 인간이 하나님을 점령했더라도 하나님의 사랑관계를 중심삼고 최고로 추구하는 그 종착점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에, 인간은 하나님의 종도 원치 않고, 양자가 원치 않고, 둘도 없는 아들딸이 되고 싶다는 결론에 도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자리는 주체와 대상 관계에 있어서 주체도 원하는 자리가 되어야 되고 대상도 원하는 자리가 되어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