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6집: 체휼과 실천 1975년 02월 02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36 Search Speeches

사람은 대개 지적인 사람과 영적인 사람으로 분류된다

그러면, 이런 경지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대개 우리 사람을 보게 되면 두 종류입니다. 하나는 지성적인 사람으로 진리로써 뭘 탐구해 가지고 이치에 맞으면 인정하고 이치에 맞지 않으면 부정하는 타입의 사람, 또 다른 하나는 그런 이치보다는 감으로 파악하는 사람입니다. 그걸 우리 통일교회 술어로 말하면 영적이다, 지적이다 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면의 사람, 지적인 면의 사람. 영적인 사람은 내적인 면에서부터 느껴 가지고 외적으로 적용하려고 하는 사람이요, 지적인 사람은 외적인 면에서부터 느껴 가지고 내적으로 적용하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는 나가는 종류요, 하나는 들어오는 종류입니다. 이 두 종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 있기 때문에 지성적인 사람은 대개 기도를 싫어합니다. '아 거 기도, 기도가 무슨 필요 있느냐?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라는 말을 어떻게 하노?' 실감이 안 난다구요. 그걸 딱 생각하면 미신 같고, 믿을 수 없고 자기 자체가 부정되는 것 같고 말이예요, 이런 느낌이 든다는 겁니다. 이건 지성적인 사람입니다. 이론을 따져 가지고 무엇을 찾겠다고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있는 동시에 나면서부터 '하나님!'하는 말이 아주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설명하기 전에 막 좋다구요. '아버지' 하게 되면 밥을 안 먹더라도 좋다는 거예요. 그런 사람이 있다는 거예요.

그런 감도가 다르다는 거예요. 대개 영적인 운동에 있어서 혁명적인 운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지성적인 사람은 못 합니다. 난 그렇게 봐요. 대개 신앙세계에서 위대한 일을 하는 사람은 지적인 사람이 아니라 무식하고 미욱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영적인 사람입니다. 세상이야 어떻든 느끼는 대로 해보는 거예요. 하나님이 하라고 했으니 해보는 거라구요. 하다 보니 그것이 실천하는 환경에 백중하는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거예요. 이럼으로 말미암아 위대한 인물로 등장할 수 있는 일도 벌어지는 거예요. 바울 같은 사람도 지성적인 사람이라구요. 그런데 다메섹에서 하늘의 영적 벼락을 한번 맞고 나서 돌아 버렸다구요. 그러니까 외적으로 탐구하는 것보다는 내적으로 이렇게 폭발적인 느낌의 길이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전부를 부정하고 그것을 존중시한 거예요. 거기에서 새로운 기독교의 혁명의 기수가 된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성적으로 따지는 사람은 종교적인 심령세계의 위대한 지도 역할을 할 수 없다 하는 것을 우리는 흔히 봅니다. 여기 박장로 같은 사람도 미욱한 사람이라구요. 생기기도 미욱하게 생겼다구요. 보게 되면 얼굴도 두텁게 생겼고 말이예요. 그거 다 무엇이 있다는 거예요. 그러한 두 종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