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4집: 최후의 전선 1976년 03월 01일, 한국 대구교회 Page #303 Search Speeches

국가기준을 넘어서기까지의 노정

이래서 통일교회 역사가…. 여기 대구에 앉아 있는 여러분들은 편안하게 앉아 있을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집회장이 없어서 서 가지고 예배를 얼마든지 봤다구요. 눈 구덩이에서 얼마든지 예배를 봤다구요. 내가 여기 대구에서 한 달에 열세 번이나 이사한 사나이예요. '이놈의 땅' 하고 저주를 할 것이지만, 그래도, 요나를 시켜서 니느웨성에 예고하라고 했는데 니느웨성이 전부 다 멸망하기를 바라 가지고 도망가던 요나를 고래뱃속에 처넣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멸망시키겠다고 할때는 나는 '아버지여, 한 번 더 참아 주시오' 할 수 있는 여유만만한 여력을 가지고 대구성을 찾아 주겠다고 생각한 사나이라구요.

자, 이렇게 30여 년의 곡절의 사연이 많은 걸음을 걸어와 가지고 뭘하자는 거냐 이거예요. 국가를 우리 편에 세우고, 세계를 우리의 편에 세우고, 이 악마와 더불어 대결하자는 거예요. 악마와 대격전을 하는 거예요. 누가? 내가 해야 되겠다 이거예요, 내가. 그런 싸움을 하는 거예요.

여러분, 지금 그렇잖아요? 힘의 세계에서 무슨 가라데(일본 특유의 권법)라든가 무슨 뭐 무술세계에서는 서로가 힘의 위세를 나타내기 위해서 대결을 하잖아요? 그럴 수 있지요? 그거 알지요? 그 대결에서 패하는 날에는 없어지는 거예요. 내가 그런 것을 알고 방어해 왔습니다.

한국에서는 내가 30년 동안 입을 딱 봉하고…. 한국은 상대도 안 된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알겠어요? 한국에서는 청파동에서 30년 동안 허리 부러진 호랑이 모양으로 내가 공석에…. 선생님이 언제 대중집회를 한 번 해봤어요? 안 해봤지요? 해봤어요, 안 해봤어요?

1976년도에는 이 축복가정들을 중심삼고 내가 민족 앞에 모든 것을, 투입할 수 있는 것을 다 투입했어요. 이 영적인 민족적인 기준에 있어서는 종교 하면 통일교회를 들 수 있는…. 그건 국가나 일반 사람이 보더라도 명실공히 통일교회가 그럴 수 있다 하는 내용을 딱 제시해 놓게 되면 내가 한국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거라구요.

그래 가지고 내가 1972년도에 미국을 건너간 거예요. 건너갈 때…. 그걸 사탄들이 알아요. 얼마나…. 김포공항에서도 마사(魔事)지, 일본에 가서도 마사지, 캐나다에 가서도 마사지, 미국 국무성에서는 문 아무개가 들어온다고, 문제의 사나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못 들어오게 요리 막고 조리 막았어요. 그렇지만 하나님이 보우하사, 안 될 것 같으면서도 되는 것이요, 못 갈 것 같은데도 가는 거라구요.

이래서 미국에 들어가자마자 선전포고를 한 거라구요. 기독교 하게 되면 미국이 세계 본영지라구요. 거기서 '내 이 사나이는 오늘날 기독교를 중심삼고 이 미국에서 공격을 한다' 해 가지고 선전포고를 했다구요. 3년동안에 선전포고를 해 놓았어요. 선전포고하는 그 3년 동안에 많은 주(州)를 다니며 많은 집회를 하면서 상장, 표창장을 많이 받았지요. 명예 시민증도 많이 받고…. 알겠어요? 미국에서 무려 1,200장에 해당하는 표창장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역사 이래 아시아인으로서 미국 천지에 와가지고 그런 표창장을 받은 사람이 없을 거라구요. 알겠어요? 결국은 일대 선풍을 일으켜 가지고, 일대 공격전을 펴서 대환영을 받고 1974년 12윌 28일에 환국(還國)한 거예요. 한국으로 돌아온 거예요.

그다음에 1975년에는 한국에서 작전(구국세계 대회)을 한 거예요. 그거 왜 그러냐? 지금까지 복귀섭리는 국가기준을 향해서 올라올 때까지는, 국가기준까지 올라올 때는 꺼꾸로 올라오는 거예요. 국가기준을 넘어서 부터 횡적으로 가는 것을 모른다구요. 1972년까지는 우리 통일교회가 이 대한민국을 중심으로 까꾸로 올라왔지만, 올라 오는데 밟혔지만 뚫고 올라와 가지고 이제는 국가기준을 넘어섰어요. 그 기반을 닦았기 때문에 내가 횡적인 이 세계 기독교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