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집: 아버지와 나 1959년 07월 12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61 Search Speeches

예수님을 대해 사탄이 참소할 수 --던 이유

예수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아셨는데 그 아버지를 어떤 아버지로 알았느냐. 가시면류관을 쓰고 있을 때 하나님이 자기보다 몇 천만배 고통스런 가시면류관을 쓰고 계심을 느꼈고, 십자가에 못박히게 될 때도 하나님이 자신보다 몇 천만배 고통을 당하고 계심을 알았습니다. 심장에 창이 들어오더라도 예수님은 하나님이 자기 이상 고통스런 자리에서 자식을 위하여 수고하는 아버지이신 줄 알았기에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한을 남길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고통을 당하며 갈지라도 인류 앞에 한을 남기지 않겠노라고 결심하셨습니다. 원수를 대해 말할 수 없는 통분과 원한을 가질 수 있는 자리로되 하늘의 참으심을 생각하게 될 때 그럴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한스러운 인류를 구하기 위한 예수였기 때문에 자신의 죽음과 고통을 이겨야 했습니다. 그런 예수여야만 구주가 된다는 것입니다. 생명을 잃어버린 인간이었기에 생명을 잃더라도, 모든 욕망을 다 포기하고서도 하늘을 원망하지 않는 입장에 들어가야 합니다. 예수는 그런 입장에 들어갔기에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한 생명의 구주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원망의 마음을 갖지 않은 예수, 분하다는 마음을 갖지 않은 예수, 역사적인 한에 의해 지배당하지 않은 예수였기에 사탄이 참소할 수 없었습니다. 사탄은 어떤 존재냐? 역사적인 한을 제시하여 참소하는 존재요 사정적인 것에 사로잡히게 될 때에 못 간다 하고 막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사탄이 예수님을 참소하지 못한 것은 이 타락한 세계의 원한, 천주의 원한까지도 그에게는 걸릴 수 있는 조건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조건을 갖고 하나님께 항의하던 사탄도 쌍수를 들고 항복하였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은 가식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죽어 사라지는 것보다도 인류가 영원한 죽음에 빠지는 것을 염려하며 눈물짓는 사람을 참소한다면, 사탄은 그 본체가 파괴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사탄이 주관하지 못합니다. 오로지 하나님만이 주관하신다는 것입니다. 믿음과 소망권내는 사탄이 얼마든지 참소할 수 있으되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일편단심의 간곡한 마음권내는 사탄이 손톱만큼도 점령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탄의 모든 인연을 넘어선 세계가 천국이기 때문에 천국은 사탄과 인연이 없는 세계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께서 부르던 그 아버지를 오늘 우리는 그의 공로에 의지하여 `아버지여' `주여' 하면서 부르고 있습니다. 황공한 일입니다. 오늘도 죄악권내에서 허덕이고 한스러운 생활의 일편을 붙들고 눈물짓는 우리입니다. 오늘의 사회와 이 세계를 바라보게 될 때 흘러가는 사조는 역사적인 한을 품고 뒤넘이치고 있고 공포에 싸여 있습니다. 이런 세계 속에서 내 감정을 점령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뇨? 공포입니다. 내 생활을 휩쓸고 있는 것은 무엇이뇨? 말할 수 없이 파탄된 의리입니다. 더욱 하늘은 새로운 세계를 세우고 싶고 참된 의를 세우고 싶은데, 그것들을 세울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늘은 오늘도 변함없이 그러한 사람을 찾아 헤매고 계심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