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집: 부활의 날을 맞이하여 1957년 04월 17일, 한국 서울근교 야외 Page #183 Search Speeches

부활의 날을 맞이하-

누가복음 23:50-56

부활의 날은 인간이 타락한 그 날부터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하나님이 소망하시던 날입니다. 또 유대민족은 물론 전 인류와 만물까지 한결같이 타락의 상태를 벗어나 부활할 수 있는 한날, 곧 그 부활의 날을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즉, 하나님은 4천년 동안 실체적인 부활의 날이 이땅에 찾아지기를 소망하여 나오셨으며, 예수님 또한 실체적인 부활의 날을 맞이하고 자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민족의 무지의 소위(所爲)로 인하여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예수는 실체적 부활의 사명을 이루지 못한 채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그 후 2천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 실체적인 부활의 날은 온 인류와 만물 만상 앞에 소망으로 남아졌습니다.

하나님이 복귀섭리해 오신 그 4천년의 섭리역사의 전 책임과 우주적인 사명이 예수님께서 걸려 있었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아는 자가 과연 몇이나 있었을까요? 자신을 중심한 소망이 아니고, 역사적이고 우주적인 하나님의 소망을 이루는 것이 곧 자신의 소망이었으며, 오직 천상천하(天上天下)가 하나님 앞에 부활의 노래를 불러드리는 날을 소망하고 30여 평생 그 소망을 한시도 잊지 않고 애달픈 생활을 해왔던 예수님의 심정을 그 누구 한 사람이라도 깨닫는 사람이 있었던가! 예수님은 이스라엘 민족이 무지하여 자기를 믿어주지 않았지만 그들에게 역사적이고 우주적 소망인 부활의 영광을 주시기 위하여 자신의 전생애를 희생하며 걸어 나오셨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아무도 아는 자가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면서부터 십자가상에서 운명할 때까지 이 한 소망인 부활을 위하여 얼마나 노력했으며 고심했는가 하는 것을 여러분이 알지 못한다면 예수님의 그 부활의 가치는 여러분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될 것이며, 또한 여러분은 그 부활에 대한 은혜에 감사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무지한 인류를 바라볼 때, 그들이 불신으로 인하여 앞으로 어려운 길을 걷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의 어려움을 다 잊으시고 만민이 걸어야 할 어려움의 길, 죽음의 길이 결코 후대에까지 미쳐지지 않도록 그들 앞에 부활의 한 때를 세우시려고 남 모르는 고난의 길을 간곡한 심정으로 고심하며 걸으셨지만, 이러한 사정을 온 인류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자기의 생애 전체를 자신에게 귀결시키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소망하는 그 뜻이 우주적인 차원에서 결실되기를 바랐던 것이 예수님의 소망이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노정을 인간들은 몰랐으나 하늘의 천사들과 뭇 영인들과 하나님께서는 알고 계셨으니, 당시 예수님의 마음을 알아주신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바랐던 친구는 하늘나라의 친구가 아니고 땅 위의 인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인간 대신 하늘이 그의 친구가 되었습니까? 이스라엘민족이 바로 예수님의 심정을 알아주는 친구의 입장에 섰어야 했었는데 당연히 그래야 할 이스라엘 민족이 그렇게 되어주지 않았으므로 하늘이 대신 친구의 입장을 취해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사정을 알고 하늘 아닌 땅 위에서 예수님의 심정을 대신하는 참사람이 되어 땅 위에서 진실한 친구를 원하셨던 예수님의 소망을 이루어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인하여 만물은 새 주인을 맞이하는 기쁨을 갖게 되었고, 인간은 재출발의 길을 맞이하게 되었으며 예수님은 영적 투쟁에서 승리의 기쁨을 맞이할 수 있었고, 4천년간 사탄의 참소를 받아 왔던 하나님은 예수님의 부활로 인하여 외적으로나마 참소를 벗어날 수 있는 기쁨을 맛보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인하여 이와 같이 천상천하에 기쁨이 있었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사탄에 대한 승리의 기쁨은, 죽어서가 아니라 살아 생전에 가져야 할 기쁨이었으며, 예수님의 부활로 인한 하나님의 기쁨도 사탄에 대한 외적인 것만이 아닌 내적 외적 승리의 전체적인 기쁨이었어야 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의 죽음으로 인하여 하나님은 물론 온 인류가 마땅히 맞아야 할 보다 더 큰 기쁨은 오늘날까지 숙망(宿望) 의 대상으로 남아져 내려오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에게는 이보다 더 큰 우주적인 기쁨을 하늘 앞에 돌려 드려야 하는 사명이 있을 뿐만 아니라 여러분 스스로도 그러한 기쁨을 느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영적 부활의 기쁨은 만물, 인간, 예수, 하나님이 영원히 가져야 할 기쁨은 되지 못하였으니, 그 기쁨은 한편 슬픔을 내포한 기쁨이요 지엽적(枝葉的)인 기쁨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이 지엽적인 기쁨을 우주적인 기쁨으로, 슬픔을 동반한 기쁨을 슬픔을 동반하지 않은 영원한 기쁨으로 이 땅 위에 세워놓아야만, 예수님의 부활로 인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신 것 이상으로 여러분의 부활로 인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만 여러분은 진정으로 예수님의 부활의 기쁨을 통하여 하나님의 기쁨을 맛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 각 개인의 소망과 의무라 할진대,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대해 가졌던 소망을 여러분 자신의 소망으로, 예수님의 의무를 여러분 자신의 의무로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여러분은 부활의 날을 기뻐하기 전에 예수님께서 부활할 때까지 수고하신 노정과 하나님께서 4천년간 수고하신 노정을 생각해야 할 것이며, 그 수고의 노정을 여러분 자신이 직접 걸음으로써 하나님 앞에 남아있는 그 소망을 이뤄드릴 수 있는, 하나님 앞에 영원한 기쁨을 돌려 드릴 수 있는 여러분의 신앙생활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