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3집: 극복과 승리 1994년 08월 16일, 미국 알래스카 코디악 Page #39 Search Speeches

김일성 부자의 마음을 사로잡아 "았다

김일성을 대해서도 그렇고, 고르바초프를 대해서도 그래요. 고르바초프는 이제 선생님이 무슨 명령을 해도 다 들을 수 있게끔 되어 있어요. 요전에도 정상회의에 참석하라고 불러서 오기로 되어 있었는데, 김대중이 먼저 가서 교섭했다고 '문총재가 나중에 갔는데, 내가 초청해서 왔다.' 하며 도적질하려고 한 거예요. 그래, 본인이 확실히 선포를 했기 때문에 물러난 거예요. 그들은 공산당 괴수들 아니예요?

김일성이 선생님을 얼마만큼 좋아하는지 모르지요? 그런데 죽었다구요, 내 말 안 듣다가. 전부 다 그들한테 까딱 잘못하면 이용당합니다. 그들은 이용하려고 그래요. 나는 그런 생각이 없습니다. 내가 이용당하려고 한다 이거예요. 고르바초프를 찾아갈 때나 김일성을 찾아갈 때 탕자를 찾아가는 부모의 마음을 가지고 갔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감동을 안 받아요. 뿌리 밑에 파고 들어갈 수 없어요.

그럴 수 있는 심정적 기준을 가지고 대했기 때문에 그가 잊을 수 없어요. 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좋은 일이 있든가 슬픈 일이 있으면 대번에 문총재한테 연락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자기 어머니 아버지 이상, 자기 형제 이상으로 생각한 거예요.

탕자를 보호할 수 있는 부모라는 거예요. 성경에 보면 탕자 동생이 돌아온다고 해서 형님이 불평했다구요. 형님은 자기의 모든 재산까지 옮겨 주고 싶고 부모 대신 축복해 줄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그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큰소리했더라도 그 앞에는 못 넘어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부자끼리 만나서 하는 말이, 참 이상하다는 거예요. 자기가 세계의 수많은 난다긴다하는 사람들을 다 만나 보고 그랬지만, 그 사람들은 다 거품같이 사라졌지만 문총재만은 자기 일생에 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좋은 일이 있어도 생각나고, 나쁜 일이 있어도 생각난다는 거예요. 죽기 전에 그런 얘기를 다 했다는 것입니다. '어려운 것이 있으면 문총재하고 의논하라. 내가 사람을 볼 줄 안다. 문총재는 절대 너를 이용할 사람이 아니다.' 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북경에서 대회 할 때 20명의 학생들을 보낸 것입니다. 한총련이 북한 학생들을 만난다고 해도 만날 수 있어요? 남한에서도 전부 반대하고 북한에서도 반대하는데 말이에요. 두 정부한테 허가를 받아 가지고 한총련 학생하고 김일성대학 학생들이 만난 것입니다. 그건 김일성도 못 했고 한국 대통령도 못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하는 것입니다.

김일성이 죽기 전에 20명을 딱지 떼 가지고 '너 문총재한테 가서 잘 만나 보라.' 하고 죽은 거예요. 그 다음에는 동경대회를 하려고 그러는데, 3백 명을 동원할 수 있겠느냐 이거예요. 북한 학생, 남한 공산당 학생 3백 명, 그 다음에 우리 원리연구회 학생 해서 7백, 8백 명 모이는 대동경대회를 하자고 한 거예요. 그래서 이번에 '문총재가 원하게 되면 얼마든지 보내 주겠소!' 한 것입니다. 그래, 일본 정부가 받아 줄는지 모르지요. 일본 정부가 전부 다 비자를 내줄는지 모르겠어요. 그런 어려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