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집: 통일식구의 사명 1971년 02월 16일, 한국 성동교회 Page #206 Search Speeches

새 종교 출현의 필-성

오늘날 전세계를 바라보게 될 때, 지금의 때는 종교계가 예고하고 있는 말세의 때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기독교는 기독교대로 싸우고, 불교는 불교대로 싸우며, 유교는 유교대로 싸우는. 이렇게 모든 종교가 싸우고 있는 실상을 바라볼 때에, 이것은 종교로서의 본질을 상실하고 종교로서의 소원하던 목적과 완전히 이탈된 모습입니다.

이렇게 그대로 서로 싸우면 어떻게 되느냐? 한 가정에서 어머니와 아버지가 싸우고, 그 다음에 형제끼리 세 번만 싸우게 되면 그 가정은 이미 볼장 다 본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새로운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시련의 한 골짜기에 떨어졌다가 다시 차례로 올라와야 됩니다.

이런 것을 생각해 보게 될 때, 오늘 모든 종교가 예고한 말기를 맞이해야 할 이런 세계적인 정상에 있어서는 기독교면 기독교, 불교면 불교도 다 몰락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때에 있어서 종교는 어떻게 대처해야 되느냐? 기독교면 기독교에서 새로운 방안을 모색해야 됩니다. 불교면 불교에서도 새로운 방안을 모색해야 됩니다.

과거의 모든 그릇된 것을 제거하고 새로운 것을 보강함으로써 새로운 싹이 나오듯이 새로운 무엇이 나와야 합니다. 잎도 없고 가지도 앙상하게 말라붙어 쓰러져 가는 나무에서 하나의 새순이 나와야 됩니다. 그래야 이 나무를 거름삼아 잘 자랄 수 있는 새로운 무대가 마련되고 새로운 운동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옛날의 것을 그냥 가지고는 사회 앞에 공헌할 수 있는 참된 종교가 될 수 없습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는 기독교의 배경을 갖고 나왔지만, 우리 통일교회가 주장하는 것은 기성교회의 그것과는 다릅니다. 과거에 믿고 나오던 기성 교회와 마찬가지의 교파로서 나왔다면 통일교회 역시 흘러가는 역사의 물결과 더불어 흘러가 버릴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통일교회는 흘러가는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새로운 체제와 새로운 하나의 내용을 갖추어 가지고 흘러가는 그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 자리를 잡고 뿌리를 박아 새로운 출발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는 부패되었습니다. 미국을 보나 구라파를 보나 현재의 한국 교계를 바라보나 기독교는 이미 끝장이 났다는 것입니다. 한국 교계는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끝장난 기독교를 그냥 그대로 두어야 할 것이냐? 그냥 그대로 둬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옛날에 부르짖던, 혹은 기도하고 사고하고 성경을 보고 설교하던, 그 당시의 것이 그냥 그대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끝장이 난다는 것은 내용이라든가 형식이라든가 그 무엇이 본질과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내용이라든가 형식이라든가 하는 것이 그냥 두어 가지고는 안 됩니다. 새로운 것, 내용이 다르면 더욱 좋지만 내용이 같더라도 그것을 보다 충실히 갖추고, 형식도 보다 충실히 해 가지고 세계적인 사조에 맞을 수 있다면 이 문화세계 발전도상에 있어서 상관적인, 상응적인, 보응적인 관계로써 보조를 맞추어 가지고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 앞에 도움이 될 수 있고, 자극이 될 수 있지만 옛날의 그것 가지고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옷을 입어야 하는데 그 옷이 다 낡아서 입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낡은 옷감을 가지고 새 옷을 짓겠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새 옷을 지으려면 감을 새로 떠와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 그것이 한복이었다면 그것을 뜯어 가지고 요즘 유행하는 미니스커트를 만든다든가 하는 다른 방법을 취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렇게 폐물을 이용하는 방법이라도 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을 생각해 볼 때, 오늘날 이 역사적인 종말이 수많은 종교 앞에 혹은 수많은 종파 앞에 부딪쳐 오는 현시점에 있어서 '통일교회'가 나왔다는 사실은 내용이야 어떠한지 모르지만 그 표현이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내가 통일교회 선생이라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환경을 이렇게 저렇게 헤아려 볼 때에 수많은 종교들이 어차피 떨어질 나뭇잎과 같고, 어차피 쓰러져서 썩어질 나무와 같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무슨 목표라든가 소망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완전히 안 되면 뭐든지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새로운 내용을 제시하고, 새로운 형식을 제시해야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