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1집: 하나님의 뜻과 우리들의 일 1978년 10월 22일, 한국 본부교회 Page #90 Search Speeches

종교가 부정과 비약의 길을 "구하" 이유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그래요. 오늘날 우리 인간의 역사를 보게 되면 미신 같은 것. 미신세계가 있다는 거예요, 미신세계. 인간은 뭔지 모르게 무엇을 믿고 싶은데 그것을 자의로 할 수 없으니 미신을 중심삼고, 혹은 무당을 중심삼고 푸닥거리를 한다든가 뭘해 가지고 자기들끼리 모색하고 추구하는 것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인간에게는 그런 경향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 영적 체험권 내에 서 있는, 그 정도는 낮지만 그런 사람들의 말에 따라 자기 생의 문제를 맡겨 처리하는 이런 방향으로 가는 사람들이 미신을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미신으로 전부 생각하는 거예요.

신의 세계도 혼란과정을 거치고, 인간세계도 혼란과정을 거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인간이 가야 할 것은 공의의 길이다. 선해야 되는 것이다. 전체를 위하고 회생해야 되는 것이다' 이렇게 막연하게 그래야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 편으로 볼 때 '선한 사람이다' 하는 사람은, 도대체 선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그는 자기를 중심삼는 사람이 아니다 이거예요. 자기를 부정하고, 그 무엇인지 모르지만 전체를 위해서 보다 가치로운 것, 보다 귀한 것을 찾고자 하는 생활의 길을 남기고 가는 사람들을 선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냐? 환경으로부터 다 부정당한 사람이라구요. 그런 사람을 환경이 절대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구요. 그 환경으로부터 핍박받는다 이거예요. 환경을 부정했는데 부정당한 환경이 그 부정한 사람을 또 부정하는 놀음이 벌어진다 이거예요. 이거 왜 이러냐 이거예요. 여기에는 상충적인 이율배반적인 길이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된다구요.

선한 하나님이 있다면. 그 선한 하나님은 오늘날 인류세계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데, 거기에 악한 사탄이 있어 가지고 현실적 환경을 그냥 그대로 고착시키고 정지시키고자 하는 놀음을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는 싸움의 역사가 없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을 중심삼고 인륜 도덕적인 노정을 추구해 나가는 데 있어서도 선한 사람은 공적인 것을 추구하기 때문에 개인을 부정하는 놀음을 어차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희생하는 사람이 선한 사람입니다. 자기를 부정하는 환경을 갖고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 선한데, 왜 선하냐? 그렇게 감으로 말미암아 자연히 하늘과 통할 수 있는 인연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가는 길을 선한 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자. 그러니 인간만을 위주한 도덕세계에도 역시 투쟁이 있는 것입니다. 종교의 면에 선 사람은 이 도덕세계의…. 그 길은 멀고 먼 길이다 이거 예요. 우리 인간 일생의 7,80년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 타락한 세계를 넘어서 가기에는 너무나 완만한 길입니다. 너무나 긴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여기에서 급진적이요. 비약적인 길을 추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적인 길을 가되 인간적인 도리를 중심삼고 도덕적인 관념에서만 공적 길을 갈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 신에 의한 도덕적인 세계로 비약해라 이겁니다. 전체를 일시에 부정함과 더불어 그 환경에서 완전히 비약해라 이거예요. 비약해서 피안의 세계, 색다른 세계로 도입할 수 있는 경지를 추구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니 그 방법이 무엇이냐? 여기에서 세계로 뛰쳐 나가는 것이 아니라구요. 비약을 하기는 해야 하지만, 그 길을 취하려면 완전히 부정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럼으로 말미암아 자기 자체가 그 자리에서 비약적인 자리로 설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종교는 전부 다 부정하고부터 찾아 나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아요?

예수님도 이 땅에 오셔서 선포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는 거예요. 이거 모순된…. 천국이 가까왔으면 회개 안 하고 가면 얼마나 좋겠나 이거예요. 안 그래요? 무슨 역설적인 이런 내용을 제시해 가지고, 인간이 그렇지 않아도 어렵게 사는데 또 회개하라고 하느냐? 도대체 회개가 무엇이냐 이거예요. 회개는 완전히 돌아서는 것입니다. 죄를 짓고도, 그것이 죄임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죄를 지은 것을 알게 될 때는 완전히 부정하고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돌아서는 거예요. 그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뭐냐 하면 180도로 전환하는 하나의 표제다 이거예요.

그러면 회개하면 어떻게 되느냐? 결심이 생긴다구요. 그렇잖아요? 사람이 비장한 결심을 하게 된다구요. 죽을 각오를 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통곡하게 된다구요. 그건 뭐냐 하면, 다시는 이 길을 안 가겠다고 절대적으로 작별하는 것입니다. 회개하기 전과 회개한 후에는 세계가 다르다 이거예요. 뭐 45도가 아니예요. 180도로 다르다구요. 90도가 아니예요. 180도로 다르다구요. 회개하기 전과 회개하고 난 후에는 천양지판이다, 다르다 이거예요. 옛날에는 사탄세계에 있었다 하면, 오늘은 하늘세계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 놀음을 종교에서는 반드시 제시해야 됩니다.

그래서 종교세계에는 출가라는 명사가 있는 것입니다. 집을 나가는 거예요. 집을 버리고 떠나는 거예요. 자기 어머니 아버지만 버리는 것이 아니예요. 그 집 뒤에는 씨족이 있고, 민족이 있고, 국가가 있고, 세계가 다 걸려 있다는 거예요. 그것을 알아야 돼요.

출가라는 말이 있어요. 집을 버리고 종교의 길을 나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연하여 세계를 버리는 것이요, 그다음에는 국가를 버리는 것이요, 민족을 버리는 것이요, 종족을 버리는 것이요, 가정을 버리는 것이요, 가정 가운데 있는 처자는 물론이요, 부모까지 다 버리는 것입니다. 다 버리고 가는데, 어디로 가느냐? 나라가 원하는 길이 아니고, 사회가 원하는 길이 아니고, 가정이 원하는 길이 아니고, 부모가 원하는 길이 아니고, 처자가 원하는 길이 아닙니다. 누가 원하는 길이냐? 하나님이 원하는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원하는 길을 가는 데는 왜 이렇게 버리고 나서야 되느냐? 이러한 문제를 추구하게 될 때, 이것은 타락했기 때문에 이렇게 되었으니,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세계를 찾아가려면 불가피적으로 버리고 나서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가장 이론적으로 타당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