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6집: 우리의 사명과 책임 1971년 08월 13일, 한국 청평수련소 Page #128 Search Speeches

아벨대신 죽을 수 있" 가인이 있어야 된다

이렇게 생각할 때, 우리 통일교회에 있어서 지방 교회가 처해 있는 상황이 어떻다는 것을 선생님이 잘 알고 있습니다. 어려움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자체내의 어려운 교회에 협조하지 않고 막대한 경비를 기성교회 목사나, 우리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교수들 앞에, 그것도 그들을 손님 중에 최고의 손님으로 우대하면서 소모하는 그런 일을 하느냐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런 일을 하는 종교단체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뜻과 사명으로 볼 때, 먼저 가인을 굴복시킨 후에야 아벨로서의 사명이 출발되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가인을 복귀한 터전을 갖지 못하고는 아벨로서 출발을 못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리입니다. 이것을 통일교회 자체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지방에서 통일교회를 책임진 책임자로서 양면의 세계를 규합할 수 있는 책임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들이 종족적인 기준에서는 통일교회 식구를 만드는 것이 책임이지만, 민족적 기준에 있어서는 기성교회와 통일교회를 연결시키는 사명도 해야 됩니다. 그 다음은 여러분의 가정도 연결시켜야 돼요. 이렇게 볼때 소생급 사람은 누구냐? 기성교회 교인들입니다. 거꾸로 되는 겁니다. 다음 장성급 사람은 누구냐? 지금까지 여러분들 중심삼고 연결된, 종족적 가인편의 입장에서 전도된 사람들입니다. 그럼 완성급의 사람은 누구냐? 여러분의 혈족이 될 것입니다. 그런 입장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반드시 가인적 터전을 확보하고 난 후에 아벨적 터전으로 돌아가야 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아벨적 종족을 복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게 원리라구요. 그러면 아벨적 가정과 종족을 복귀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아벨적 가정의 사명을 완결지어야 됩니다. 또 아벨적 사명을 완결지으려면 가인적 가정을 굴복시킨 터전이 있어야 됩니다.

그게 결국 무엇 하자는 것이겠습니까? 반드시 자기로 말미암아 사탄세계의 몇 가정을 구원해 가지고 그 가정이 자기를 위해서는 생명까지 바치면서도 따라올 수 있는 그런 전통적 사상을 심어 놓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가인과 아벨 관계에 있어서 하나된다면, 그것은 어느 기준에까지 하나되어야 하겠느냐? 그냥 따라만 가면 되겠느냐? 아닙니다. 그냥 따라간다는 것은 예수와 열두 제자가 맺었던 관계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완전히 하나됐다는 것은 무엇이냐? 상대를 위해서는 생명까지도 버릴 수 있는 기준까지 가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께서 죽음의 자리에 나가게 될 때에 제자들은 아벨인 예수님을 죽게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것이 하나님의 한이 되었기 때문에 아벨이 죽음을 당할 상황하에서는 가인이 대신 죽어 주어야 되는 겁니다. 그래야 탕감복귀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민족적 섭리를 중심삼고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노정에 있어서 반대하던 유대교를 수습하기 위해서 내세웠던 열두 사도는, 곧 12지파를 대표한 입장이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아벨적 입장이라면 열두 사도들은 가인적 입장입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것으로 비운의 역사를 심어 놓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벨이 죽임을 당하는 자리에 들어 가게 될 때, 아벨을 죽이는 가인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아벨을 대신해서 죽을 수 있는 가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원리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을 중심삼고 볼 때, 여러분은 지금까지 제사장의 책임을 지고 다른 사람들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벨적인 입장에서 책임을 해 나오고 있는 여러분이 가인적인 개인이면 개인, 가인적인 가정이면 가정, 가인적인 종족이면 종족을 전도했을 때, 그들 중에 여러분을 위해 생명을 바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 그런 사람이 없으면 복귀가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통일교회 책임자들은 전통적 사상 기준 앞에 일치 안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혁신해 가지고 실질적인 내용으로 결정지을 수 있는 아벨적 자리를 다시 확보하느냐 하는 것이 이 시대가 절실히 요구하는 중요한 문제인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여기서 여러분은 여러분 자체의 종족적 가인권의 기반을 확보해야 하고, 우리 교단은 교단적 가인권을 확정지어야 되고, 그 다음에는 민족적 가인권을 확정지어야 합니다. 이런 문제들이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