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집: 하늘의 작전 1970년 08월 12일, 한국 부산 동명장여관 Page #189 Search Speeches

복귀섭리를 이루시기 위한 하나님의 '전

여러분은 지금까지의 하나님의 작전을 생각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작전이라는 것은 전체작전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든지 개인작전을 터전으로 해서 전체작전을 하는 것입니다. 개인을 자극시키는 점(點)작전을 해서 선(線)작전까지 연결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점작전에서부터 선작전까지의 과정에는 반드시 투쟁이 있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투쟁에서 승리하지 못하고 그 과정에서 지쳐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점작전에서 기반을 닦는 일은 단시일내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때는 일생 동안을 해도 안 될 때가 있습니다. 몇 대를 거쳐서 하는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몇 대까지 걸려 가지고 마련된 그 점을 어떻게 연결시키느냐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특정한 민족을 택해 섭리를 해 나오신 것입니다. 특정한 민족을 중심삼고 섭리해 나오신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점작전을 해 가지고 선작전으로 연결시킨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특정한 민족을 택해 점작전을 하시는 것입니다. 거기에 강력하고 신령한 영적 힘을 주입시켜 가지고 인간에게 새로운 분야의 문제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그때에 제시하는 것은 어떠한 단체의 이익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의 이익을 위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보여 주는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지금까지 아무리 전체를 위한다고 하고 또 그것을 보여 준다고 해보았지만 이 타락한 세상은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목적의 세계와는 모두 상반 되기 때문에 전체를 위해서 한다고 했지만 결국은 사탄세계를 위한 것이 되고 만 것입니다.

사탄세계를 보게 되면 그들이 하는 일은 절대로 전체를 위해서 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전체라는 명사를 내걸고 개인을 중심삼은 목적을 이루어 나가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목적에 상반되는 입장에 선 사람은 지금까지 개인적인 핍박, 단체적인 핍박, 국가적인 핍박을 받아 나왔던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역사시대에 있었던 어떤 일반 단체보다도 종교 단체의 운명이 비참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에겐 동조자가 없었던 것입니다. 모두가 방관하면서 자기들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로마시대를 살펴봅시다. 로마근교에는 카타콤이라는 길이가 20킬로미터나 되는 지하묘지가 있습니다. 초대교회 시대에 70문도나 12사도가 그 곳을 이용하여 로마에서 복음을 전파했던 것은 그 시대에 로마가 문화의 본거지였고, 법을 중심삼고 세계를 움직일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허술한 면도 있었습니다. 그 당시 로마는 진취적인 사상을 가지고 외래의 희랍문명을 중심삼은 인본주의 사상이라든가, 자유주의의 경향으로 나가려 하는 교차 시기에 있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 파로 갈라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 나라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유대교회를 중심삼고 일체를 이루었기 때문에 초대교회 신자들이 발붙일 곳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이방으로 발붙일 수 있는 곳을 찾아나섰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환경에서도 그 국가 전체가 핍박을 하기 때문에 그것을 피하려고 굴을 뚫고 거기 들어가 피신했던 것입니다.

만약 로마가 지금의 공산국가와 같았더라면 그들은 남아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굴의 뒷문을 막고 앞문에다가 불을 때거나 호스를 들이대서 물을 뿜으면 다 잡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잡히지 않고 생활한 것을 보면 그 시대에 로마의 400년 학정이 아무리 심했다 하더라도 그들의 배후에는 기독교를 옹호하고 연구하는 면도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굴 안이 전부다 공동묘지입니다. 굴이 전부 묘지로 되어 있습니다. 굴 안을 보게 되면 전부 얽어매서 선반처럼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 선반 위에다 시체를 감싸 가지고 그냥 놔 두는 것입니다. 죽었다고 해서 매장을 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시체가 썩어 냄새가 나는 가운데서 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 비참한 환경을 극복해 나왔던 것입니다. 이렇게 사는 그들을 외부사람들은 절대 동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럴수록 그들은 자기 동료들끼리 동정해 주고 강하게 결합했습니다.

그들은 세상 사람들의 모든 문제, 즉 인간으로서 생각할 수 있고 고민할 수 있는 문제에 부딪쳤을 때, 혹은 자기들이 지금까지 생활해 나오며 체험하였던 일을 반성할 때 그들의 목적을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그런 비참한 환경에 놓여지게 되었던 것은 단지 하나의 목표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 하나의 목포는 사람은 영생해야 된다는 것, 즉 영원한 세계를 찾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목표를 바라보며 이 파국을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으며 지하에서 산 것입니다. 그 지하에서 사는 것은 그야말로 비참한 일입니다.

이러한 기반으로 출발한 기독교가 오늘날 세계를 움직일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이런 것을 보면 하나님이 특정한 종족이나 특정한 사람을 중심삼아 가지고 강력한 역사를 해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점조직을 전체의 선조직으로 연결시킬 수 없는 입장에 있습니다. 그러한 활동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특정한 자리에서부터 특정한 선민권을 만들어 나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 끼리끼리는 세상 사람 그 누구도 하지 못하는 인연을 중심삼았고, 생사가 결정되는 자리에서도 서로서로가 위할 수 있는 단결된 힘을 가졌던 것입니다. 그것은 아무리 강력한 로마의 힘으로도 끊을 수 없었습니다. 칼의 힘. 권세의 힘을 가지고도 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끊어 놓으면 다시 합해지는 것입니다. 몇백 년 동안 끊으려고 애썼지만 언제나 다시 합해졌던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항상 그런 여력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힘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힘인 것입니다.

이러한 힘이 있었기 때문에 초대 기독교회 시대에 로마 박해의 기간이 아무리 길었어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4백년 동안이나 고통을 받아 왔고 핍박을 받아 왔지만 그 핍박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들은 서로가 뭉쳐 결의를 하며 그 시련을 극복했던 것입니다. 만약 핍박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결과도 없었을 것입니다. 다 흩어져 버렸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