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5집: 하나님이 원하는 세계 1972년 11월 13일, 한국 대구 교육회관 Page #16 Search Speeches

마음이 몸을 제어할 수 있어야만 선한 길을 갈 수 있어

그 반면 몸뚱이는 뭐냐 하면 남이고 뭐고 없다는 겁니다. 몸뚱이는 배가 고프면 어떻게 해서든지 먹으라고 합니다. 전부 반대의 방향으로 끌고 가는 것입니다. 이 몸뚱이는 자기가 생각하는 모든 여건들을 중심삼고 사회고 무엇이고 전체를 부정하고 너만을 위해 가지고 나가라고 명령 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에 우리는 내 자체에 있어서 선한 기준과 악한 기준을 여기서 갈라내야 되겠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마음이 바라보는 곳은 선한 곳으로 향하게 하는 것이요, 몸이 가려 하는 곳은 악한 곳인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두 경계선에 서 있는 사람이, 그 입장에 선 분들이, 그 자체들이 ‘나‘라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자신은 언제나 몸뚱이를 제어하고 양심이 원하는 방향으로 몸을 끌고 가지 않으면 선한 길을 개척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지 않고는 선한 하나님이 원하는 가정을 바랄 수 없는 것입니다. 또, 선한 하나님의 가정이 되지 않고는 선한 국가나 세계를 바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일 문제는 이런 것을 세계에서 해결하기 전에 내 자신에서 해결점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경계선이 뭐냐 하면 선악의 기준이요, 그 기준의 분립이 어디서부터 되느냐 하면 마음과 몸의 방향이 엇갈린 자리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선한 입장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어떠한 사람을 좋아하느냐 하면 남을 위해서 존재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본래 인간은 태어나기를 자기를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돼요. 세상 사람들은 자기를 우주의 어떠한 존재보다도 더 존중시합니다. 우주가 나로 말미암아 있었으면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닌 것입니다. 본래 사람은 태어나기를 자기를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왜 그러냐 하면 본래 우리 자체란 것은 원인적인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모든 출발이 나로부터 시작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 어떠한 원인에서부터 출발했기 때문에 인간은 어디까지나 결과적인 존재라는 것입니다. 어디까지나 결과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원인을 무시하고는 자기 존재의 위치를 결정지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은 태어날 적부터 반드시 원인되시는 분의 목적을 대신해 가지고 상대적인 목적성사를 바라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의 존재의 가치가 결정되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내가 태어난 것은 나를 위해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주체를 위해서 태어난 것임을 알아야 됩니다. 그 주체를 위해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 주체에게는 목적이 있습니다. 주체는 주체자의 목적이 있다는 겁니다. 주체로서 제 1원인이 있으면 주체로서의 어떠한 목적이 있다는 겁니다. 우리는 제 1주체 앞에 있어서 상대적 존재로 지음받아 태어났기 때문에 이 상대에게도 역시 목적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제 1원인의 목적과 상대의 목적이 엇갈려 가지고는 안 됩니다. 이것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하나되는 자리에서 비로소 일체가 되어야만 이 목적이 내 목적도 되는 것이요, 대상의 목적도 되는 것이요, 또한 주체의 목적도 되는 것입니다. 이 목적이 성사되는 자리는 대상도 기쁨을 느끼는 자리요 주체도 기쁨을 느끼는 자리입니다. 그러한 자리를 바라고 생활해야 하는 것이 인간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제1원인자로 보게 되면, 인간은 대상의 입장에서 기쁨을 누리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