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3집: 아시아 태평양 시대의 주역이 되자 1989년 10월 12일, 한국 서울 신라호텔 Page #319 Search Speeches

천안문 사태의 와'-서

존경하는 귀빈 여러분!

중국은 아직도 공산주의를 고집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6·4 천안문사태가 일어났을 때 대부분의 자유세계 경제인들은 중국에서 철수를 해 버렸습니다. 그 와중에 본인은 자동차공업을 추진하고 있는 실무자에게 조금도 동요치 말고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하라고 지시해서 6월 27일 광동성 혜주(惠州) 현지에서 대대적인 기공식을 하였습니다.

어려운 사정에 몰린 중국 지도자들에게 큰 혜택을 줌으로써 깊은 심정적 인연을 맺고 대국(大局)을 함께 의논하고 태평양시대를 공조(共助)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중국에 진출하는 본인의 동기가 목전의 이익추구가 아니고 하늘의 뜻을 받드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본인은 일찍이 기술평준화를 부르짖었습니다. 기술은 그 혜택이 인류 전체에 미치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선진국이 기술력을 독점하고 그것을 수단으로 하여 저개발국가에 불이익을 주는 것은 또 하나의 착취요, 죄악이라 하겠습니다.

이런 경향은 분쟁과 불화의 불씨가 되어 세계평화를 위협하게 되므로 본인은 세계를 돕기 위한 기술력을 축적하는 데 많은 재력을 들여 준비해 왔었습니다. 독일에 세계정상급의 4대 회사를 인수해서 계속 육성하고 있는데 자동차라인생산을 포함한 기계제작회사들입니다. 또한 전자기술력 확보를 위하여 일본에 첨단전자개발회사를 계속 육성하고 있습니다.

독일·일본 이외에도 여러 선진국에 기술 기반을 넓혀 가고 있는데 이와 같은 배경과 실력 기반이 없었다면 본인이 중국과 쉽게 손을 잡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단순한 기업운영을 넘어 이번 이 자동차공업도시 조성을 위한 투자도 북경의 최고지도자들을 계몽시키고, 새로운 아시아―태평양 시대의 동반자로 확고히 연결시켜, 그 결과가 이북의 김일성에게 영향을 미치도록 하기 위한 일입니다.

본인은 이 중국의 프로젝트를 우리의 안보와 구국의 차원을 떠나서 생각해 본 일이 없습니다.

한편 본인은 1976년 미국 워싱턴 대집회에서 장차 모스크바에서 큰 집회를 가질 것을 선포했습니다. 세계의 석학들과 종교 지도자, 언론계 저명인사, 예술계 대표들을 통해 이미 그 기반을 닦아 놓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