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0집: 뜻을 사랑하는 아들이 되자 1972년 08월 17일, 한국 청평수련소 Page #173 Search Speeches

심정의 3단계를 넘어서려면 3대를 초"해야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참부모의 인연을 중심삼아 가지고 3대를 초월해야 됩니다. 복귀역사는 소생, 장성, 완성 단계를 거치지요? 따라서 3대를 초월해야 됩니다. 증조 할머니뻘 되는 여자를 자기 상대로 맞을 수 있는 심정적인 훈련을 받지 않고는, 이 땅 위에서 이상적인 책임을 할 수 없습니다. 안 그래요? 그렇잖아요? 역사는 소생역사, 장성역사, 완성역사지요? 그러니까 3단계로 말하면 어머니, 다시 말하면 여편네, 할머니, 증조 할머니 이 3대를 중심삼고 사랑하는 데 있어서 거리낌없이, 싫더라도 하나님을 생각할 때 내가 당연히 가야 할 길로서 생각할 수 있는 심정을 가진 사나이가 아니고는 메시아의 사명을 못 한다는 것이 원리관이라구요. 알겠어요?「예」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이 길을 나설 때에 미인 여자를 어머님으로 삼겠다고 출발한 것이 아니라구요. 지금 사지판에 있는, 운명이 경각에 달린 그 할머니가 내 하나밖에 없는 상대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것을 붙들고 하나님의 모든 공의의 논의도 할 수 있는 심정을 어떻게 갖고 나오느냐 하는 문제를 찾을 필요가 있다는 거예요. 그래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3대를 초월하여야 됩니다. 3단계를 넘어서야 됩니다. 심정의 3단계를 넘어서야 됩니다. 그러려면 증손자에서부터 증조할아버지, 즉 나를 중심삼고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 할아버지까지 3대를 초월해야 되는 것이 도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20대에 못 만나더라도, 20년을 지나 80세 이상을 중심삼고라도 자기를 누구보다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상대를 발견할 수 있느냐 없느냐…. 문제는 그거라구요. 그러려면 나를 위해서 죽을 수 있는 여자를 택해야 된다구요. 알겠어요? 나를 위해서 죽을 수 있는 여자, 남자를 위해서 죽을 수 있는 여자를 택해야 합니다. 그렇게 나를 위해서 충성하는 할머니가 있으면 그 할머니를 붙들고 이상적인 사랑의 대상적인 존재로서 사랑할 수 있다 하는 마음을 유발시키지 않으면 복귀세계는 나오지 않습니다. 이것이 원리적인 기준이라구요. 그래야 되겠어요. 안 그래야 되겠어요?

임자네들 앞으로 영계에 들어가게 되면 선생님 앞에 얼굴을 못 든다는 거예요. 그래도 선생님이 임자네들에게 격식에 맞는 여편네들을 전부 다 택해 줬지요. 그런데 이것을 뒤죽박죽해? 그런 녀석들은 핑계를 대도, 안 듣고도 벌써 안다는 거예요. 여러분, 그럴 때가 온다구요. 앞으로 전부다 법적으로 처리할 때가 온다구요. 그야말로…. 두고 보라구요. 하나님이 아담 해와가 장성기 완성급에서 타락한 것도 안 보시려고 6천년 동안 뒤넘이쳐 나오시는데, 선생님이 복귀의 해원성사를 하기 위하여 비참한 가운데 수많은 희생자를 내 가지고 해원성사의 하나의 소망의 터전을 세워 놓았는데, 축복가정이라는 패들이 자기 멋대로 바람을 피워 가지고 잘 될 것 같아요? 자기 70대까지의 선조가 걸린다구요. 그렇게 돼 있다구요.

자, 그런 관점에서 볼 때에,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책임자들은 할머니들을 그 누구보다도 존경하면서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알겠어요? 80세가 넘은 할머니가 있으면 자기 증조 할머니 이상 존경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60이상 된 할머니들을 사랑하여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40이상 된 아주머니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 사랑을 거치고 나서야 30대에 들어와 가지고 예수님이 대할 수 있는 사랑의 대상을 찾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에 80노인 안나가 예수님을 위해서 증거했어요. 왜 그랬는지 알아요? 심정적인 기준에서 '어린 예수를 위해서 나는 죽습니다' 하는 길을 거치지 않고는 예수가 20대가 되어 가지고 정상적인 상대를 못 만난다는 거예요. 해와와 세 천사장이 전부 다 타락하지 않았어요? 세 천사장이 동방박사 세 사람이라구요. 그러므로 그것은 에덴 동산에 있어서의 세 천사장과 해와를 복귀한 형이라구요. 그 다음에 양치는 목자를 중심삼고 모든 천군천사라고 하는 것은 뭐냐? 천사세계를 상징하는 거예요.

그래서 사랑하는 마음이 예수 앞에 귀결되어 가지고 죽더라도 영원히 그와 더불어 있으면 된다는 거예요. 동방박사 세 사람은 예수를 증거하고 도망가라는 게 아니었다구요. 만일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하게 되면 동방박사 세 사람이 합세해 가지고, 공모해 가지고 요셉과 마리아와 예수를 그 나라에 데려 갔으면 어떻게 됐을까요? 어떻게 됐겠어요? 그들은 동방박사이니만큼 삼국을 연결시킬 수 있는 대표자로서 국경을 넘을 수 있는 권한이 있었습니다. 그렇지요? 그래도 그 사회에 있어서 국경을 마음대로 넘어다닐 수 있는 최고의 실력자들이 아니냐? 만약에 그런 세 사람이 마리아와 요셉과 하나돼 가지고 예수를 모시고 키웠더라면 마리아가 협조 못 했겠어요? 어림도 없다는 거라구요. 문제는 이런 원칙에서 전부 다 엇갈린 거라구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에, 문제는 심정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지방에서 활동하는데 왜 실적이 안 나오느냐? 악착같지가 않아요. 간절하지가 않아요. 배고플 때에 밥을 간절히 사모하는 것 같은 그런 마음이 나지를 않아요. 그런 마음이 나나요? 밥을 먹는 것은 실감이 나지요? 문제는 여기에 있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