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집: 하늘을 사랑하자 1969년 01월 26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92 Search Speeches

민족이 완전히 해방될 때까지 싸워 나가자

내가 이 땅을 떠나면서 흘리던 눈물을 지금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이 땅을 찾기 위해 흘리던 그 눈물을 나는 잊지 않고 있습니다. 이 민족이 처참한 자리에서 해방을 맞았을 때에도 나는 웃고 노래 부르지 않았습니다. 맞이한 기쁨의 날을 내 것으로 소화시킬 수 있느냐가 문제였습니다. 때문에 수많은 적을 막아낼 수 없는 한국의 운명을 도리어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8. 15해방을 맞이하여 수많은 백성들이 기쁨의 함성으로 부르짖을 때 선생님은 뜻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 기도해 나왔습니다.

선생님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민족 앞에 수십 번의 훼방을 받았습니다. 억울한 사연의 교차로에서 죽고자 해도 죽을 수조차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죽어서는 안 될 사명이 남아져 있는 것을 선생님이 알았기 때문입니다. 쇠사슬을 차고 형무소의 문을 두드릴 때에도 이 길을 갔던 수많은 사람들은 비통한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며 이 길을 갔지만 선생님은 그런 마음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이어나가기 위한 사명을 짊어진 사나이로서 역사과정에 있어서 야곱이 그랬듯이 천세만세에 수많은 인류의 가슴에 불을 붙여 주는 동기와 원천을 얻기 위해 기쁨으로 감옥을 찾아든 그 날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감옥에서도 가중되는 핍박과 모독을 받는 것이 억울하고 비통했지만 그 환경에서도 하나님의 사정에 가슴을 부여안고 하늘을 대한 절개를 잃지 않으려고 모든 노력을 다했습니다. 그 누구도 참을 수 없고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자리에서 바쁘게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1950년에 6·25동란이 벌어지게 되자 선생님은 수개월 후에 남한 땅을 향하여 출발하였습니다. 그러한 역사과정에서 선생님이 남한 땅을 그리워하며 오던 중에 삼팔선을 넘어오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드렸습니다. 내가 그리워했던 삼천리 반도, 하늘의 약속의 땅, 이 나라 이 민족이 오늘 왜 이렇게 되었는가를 잘 알고 있었기에 삼팔선을 넘어서면서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남한 땅에 최후의 결전이 남아 있음을 생각하면서 어떠한 환경의 어려움도 무릎쓰고 싸워 나갈 것을 각오하였습니다. 죽음을 각오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선생님이 하나님 앞에 약속하고 하나님 앞에 맹세하면서 고대하던 그 날을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이슬같이 사라지는 처참한 자리를 맞게 된다면 이 사나이는 어떻게 죽어갈 것이냐? 이러이러하게 죽어가겠다고 결심하면서 찾아가던 그 자리에 아직까지 나가지 못하였기 때문에 선생님의 사명이 남아 있는 것이요, 선생님의 갈 길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 날이 올 때까지 우리는 싸워야 되겠습니다. 그 날이 올 때까지 이 민족을 좀 먹고 이 민족을 망치는 악당의 무리를 몰아내야 되겠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분한 마음을 억제하면서 참고 나가자는 것입니다.

그래도 이 민족이 깨닫지 못하거든 세계 만방에 있는 동지들을 규합하여 이 민족을 해방시킬 수 있는 한 날을 마련해야 합니다. 통일교회가 지금까지는 민족으로부터 몰렸지만 앞으로 기필코 세계로부터 환영받을 수 있는 때가 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