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7집: 통일의 역군 1992년 02월 14일, 한국 국제연수원 Page #287 Search Speeches

공의의 자리-서 핍박을 받으면 '심 존재가 돼

문총재가 어떻게 되어 망하지 않느냐 이거예요. 하늘나라 작전은 치고 빼앗아 나오지 않아요. 맞고 빼앗아 나와요. 맞고 빼앗아 나오는데, 문총재가 처해 있는 자리의 위신이 나라님의 직속 암행어사와 같아요. 암행어사 중에는 마패 다섯 개짜리도 있지요? 다섯 개 찬 어사를 반대했다가는 다섯 개에 해당하는 벌을 받는 거예요. 마패를 하나 찼으면 하나에 해당하는 벌을 받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맞고 빼앗아 나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통일교와 문선생을 나쁘다고 욕한 모든 사람들이 어떻게 되겠어요? 핍박당하면서도 망하지 않고 그 고개를 넘게 될 때는, 손해배상을 청구해 가지고, 반대하던 사람들의 재산이 문총재 꽁무니에 와서 문총재의 재산이 되는 것입니다. (박수)

그렇기 때문에 요즈음 말 들어 보게 되면 `아이구, 한국에 있어서 문총재가 대통령 되면 좋을 텐데. 그분은 안 하려고 하기 때문에….' 그러더라구요. 그런 말이 들려 오더라구요. 그러나 문총재는 대통령 꿈도 안 꿔요. 대통령 잘못 하다가는 거지 중의 상거지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작전은 맞고 빼앗아 오는 작전인데, 원금에 대해서 손해배상, 이자까지 받아 오는 거예요. 높을 수 있는 최고의 자리, 국가가 통과 됐으면 국가가 몽땅 누구한테 온다구요? 반대받은 사람에게 오는 것입니다.

핍박은 하나님이 원수의 소유물을 상속해 주기 위한 제2의 전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에 가서 죄 없이 몰린다고 해서 화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사실이 드러나게 될 때 학교 총장으로부터, 선생님으로부터, 학생 전부가 와서 머리를 굽히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공의의 자리에서 핍박받은 사람은 중심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통일교회 중심이고, 국제승공연합을 비롯한 수많은 단체의 중심입니다. 내가 없으면 다 재미가 없대요. `아이구, 문선생님, 창시자로서 잠시라도 참석하셔서 연설만 해 준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러는 거예요. 준비는 자기들이 다 할 테니 한 번만 와 달라고 사정하더라구요.

내가 지금 70이 되었으니 이제 `내 갈 길을 닦아 가지고 정비해야 할 시대에 들어 왔는데 바빠 가지고 어떻게 하느냐? 갈 준비를 해야 되지 않느냐.' 하면 `아이구, 그저 몇 시간이면 됩니다.' 하고 야단이에요. 이상하게 됐다구요.

중심 존재가 되면 빚을 진 것은 다 갚아야 돼요. 또한 중심 존재는 책임을 져야 됩니다. 나 통일교회 단체에 대해 책임을 진다구요. 내가 일일이 돌아보지 못하더라도 여러분들을 길가에서 만나면, 내 지갑에 돈이 있으면 몽땅 다 꺼내 주는 것입니다. 한푼도 남김없이 주는 거예요. 쉬지 않고 그 놀음 해 나온 것입니다. 그 한 사람은 일 개인이 아닙니다. 모든 통일교 사람들에게 전부 다 줄 수 없으니, 그 사람을 조건으로 해서 준 거예요. 나의 정성을 따라 나의 가는 길을 돕겠다는 사람은 나 이상 복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거 망하지 않아요. 통일교회 아이들은 병도 안 나고 잘 자란다구요. 두고 보라구요. 하루에 세 끼 먹는 거 두 끼씩 먹더라도 절대 굶어 죽지 않아요. 나는 30대까지 뜻을 위해서 그렇게 살았습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돈을 보내 주면 불쌍한 사람에게 전부 다 주고, 서울에 와서는 걸어 다녔습니다. 그때 전차비가 5전이었습니다. 화신이나 노량진 건너갈 때는 반드시 적선해 주고 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만민의 한을 품고, `아버지, 길거리에서 거지 생활을 하는 이 백성에게 내가 지금 주는 돈은 얼마 안 되지만, 당신의 마음 가운데 민족해방과 더불어 이 땅 위에 부가 찾아오고 만민이 추모할 수 있는 나라가 되게 하소서.' 하고 기도하며 눈물 흘리던 생활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거기서 친구들은 전차를 타고 간다구요. 내가 그들보다 15분 늦지만 빨리 가는 것입니다. 화신까지 35분, 40분 이내에 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 길가에 있던 나무들 붙들고 하소연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옛날 청년시대에 붙들고 기도하던 나무가 하나도 없더라구요. 한강철교만 남아 있어요.

그러면서 내가 일본으로 떠나게 될 때, 한강가에 서서 하소연을 했습니다. `내가 돌아온 이후로 이 민족에게 여명의 새 아침이 올 것이니, 내 흐르는 눈물 가지고 민족의 해방을 위하여 책임을 다하겠노라'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던 건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학생시절에 써 놓은 일기가 많았는데, 일본 형사에 의해 감옥에 들어갈 때, 다 내가 불사르면서 `천년 한을 남길 수 있는 이 기록을 어디서 찾을 것이냐?' 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지금 남아 있었으면, 지금의 청소년들이 해방의 나발을 불며 탄탄대로를 달려갈 수 있는, 부모님의 전통을 이어 줄 수 있는 재료가 될 것인데, 일본 형사들 때문에 전부 다 태워야 했어요. 그런 사연들이 많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