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집: 하나님의 날과 통일교회의 사명 1970년 01월 01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32 Search Speeches

선생님의 처지

만일 선생님이 여러분처럼 대학물이나 먹었다고 꺼떡거리는 사람이었다면 오늘날까지 일생을 투입해서 이런 놀음을 했을까요? 어느 누가 뒷골목 생활하기 좋아서 하겠습니까? 그늘에 살고 싶어서 그늘에 살겠습니까? 그러나 내가 하지 않으면 전체가 문제되기 때문에 이러는 것입니다. 누가 하든지 해야 할 일이고 내가 하지 않으면 수천 수만의 사람이 해야 할 것을 알았기 때문에 타고난 팔자 소관으로 알고 오늘날까지 정면 직행해 나온 것입니다. 또한 지금도 그렇게 나가고 있습니다. 이렇듯 탕감복귀 역사를 해 나가는 데 있어서는 누구도 믿질 않습니다. 여러분의 협조도 바라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언제나 외로운 사람입니다. 혼자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는 아무도 관여할 수 없는 것입니다. 통일교인이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전부다 설명해 주고 뜻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이루어 놓고 설명해 주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만일 미리 설명해 주고 복귀할 수 있다면 이미 6천년 전에 하나님께서 인류의 창조목적은 이런 것인데 아담 해와가 타락하여 요렇게 되었으니 요렇게 하지 말고 요렇게 해서 복귀하라고 가르쳐 주기가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부모가 잘못했기 때문에 부모로서의 권위를 찾으려면 부모가 탕감하지 않고는 안 되는 것이 천리의 원칙입니다. 자기의 잘못된 것을 자식한테 넘겨 주지 않으려는 것이 부모의 소원인 것입니다. 그러나 타락한 부모는 자기의 잘못을 후손에게 송두리째 넘겨 줬습니다. 넘겨줬습니까, 안 넘겨줬습니까? 송두리째 넘겨 줬습니다. 이것을 송두리째 끊어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의 협조를 원하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여러분이 가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외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고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마음으로 고대하며 찾던 그 나라는 무한한 외로움에 잠겨 있는 나라 였습니다. 그가 찾는 가정도 무한한 고독의 장벽을 헤치고 나가지 않으면 만날 수 없는 가정이었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뜻을 이루기 위해 허우적 거리다가 10년도 싸워 보지 못하고 3년노정 끝에 십자가에 죽어간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가 불쌍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예수보다 더 불쌍해요, 더 불쌍하지 않아요? 「더 불쌍하지 않습니다」 불쌍한 패하고 불쌍하지 않은 패 중에 어느 쪽을 동정해야 되겠어요? 불쌍한 패를 동정해야 되겠지요? 불쌍한 사람을 동정해야 돼요. 불쌍하지 않은 사람은 동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니까 영계를 동정하면 동정했지 통일교회패들인 여러분을 동정하게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여러분에게 고생을 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길거리에 나가 죽을 고비에서도 살아 남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 것인지 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괜찮아요? 「예」

그런데 그렇게 일을 시켜 놓고 대가를 줄 수 있는 준비를 못 해 놓으면 몰매 맞아 죽지요? 공장이나 회사에서 종업원들이 스트라이크를 일으키고 그러는 데 그거 왜 그러는 거예요? 일을 시키고 나서 삯을 안 주니까 그러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사장이 몰매를 맞지요? 그런데 선생님이 그런 입장이 되면 몰매를 맞겠어요, 안 맞겠어요? 「안 맞습니다」 여러분이 안 때리겠어요? 「예」 그거 무엇으로 입증하겠습니까? 그럴 수 없게끔 이 시간에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웃음)

사람은 손해를 보면 손이 올라가고 발이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니 먼저 이야기를 하자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이 자리에 손해보기 위해 앉아 있습니까? 이익보기 위해 앉아 있습니까? 「이익 보기 위해서요」 그러면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이익본 것이 무엇입니까? 거지 이방 사촌밖에 더 됐어요? 무슨 이익을 봤어요? 선조들이 가던 역사적인 거룩한 자리에 동참하게 된 이익을 본 것입니다. 사람은 이익을 추구하기 마련입니다.

오늘 하루 총을 팔지 못하고 공쳤다고 해도 '세상에 나 같은 사람 없구만. 수천 수억되는 영인들아, 날 좀 봐라' 이렇게 해보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생각하기에 달린 것입니다. 아무리 쇠고랑을 차고 감옥에 들어가더라도 올림픽경기에서 마라톤 선수들이 출발선을 힘차게 박차고 나가듯이 가라는 것입니다. 하늘의 공적인 책임을 짊어졌다면 몰리고 쫓기다가 쇠사슬에 끌려가더라도 나는 힘차게 출발한다 할 수 있는 마음을 갖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곳은 역사의 맥박이 뛰는 자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역사의 주름살을 제거시켜 버리고 깊은 역사의 흐름 가운데로 들어가 그 주류가 되어 가지고 역사적인 맥박의 고동을 파동시키는 순간을 맞아야 되겠습니다. 이 얼마나 멋있습니까?

이런 것을 생각하면 옛날에 고문받던 시간이 지금도 그립습니다. '쳐라, 이 자식아!' 의식이 있는 한 나는 모른다고 했습니다. 의식을 잃어 버리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대답한 말은 있을는지 모르지만 그것은 조건에 걸리지 않습니다. 죽어 넘어져 가지고는 대답했을는지 모르지만 살아서는 대답 못 한다고 했던 것입니다. 하늘을 배반하지 않겠다는 것이었지요. 여기에 하나님을 배반할 후계자나 상속자가 있으면 손들어 보세요. 하나도 없어요? 여러분, 단단히 정신차려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