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4집: 수난의 정상 1977년 06월 26일, 미국 Page #37 Search Speeches

타락인간이 소원하" 자리

자, 그러면 이제 타락한 인간의 소원은 무엇이냐? 고통의 절정을 밟고 넘어서 새로이 부활하여 새로운 하나님을 맞이할 수 있는 자리 외에는 없는 것입니다. 종교는 무엇을 하는 곳이냐? 그런 부활의 자리를 찾아가는 길이 아니냐 이거예요. 이 고난의 절정을 초래한 기준을 밟고 넘어설수 있는 기준, 그것이 인간이 가야 할 최종의 목표가 아니겠느냐? 그럴것 같아요?「예」

그럼 부활되는 데에는 나 혼자 되어야 되느냐, 형제가 함께 되어야 되느냐?「형제가 함께요」 왜? 아담 해와, 형제가 한꺼번에 타락했기 때문 입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할 때의 심정기준 이상의 자리에서 부활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둘이 타락의 행동을 할 때 이상으로 하나되는 자리에서 타락할 때의 심정 이상의 하나님을 위하는 심정을 발견하지 않고는 안됩니다.

아담 해와의 자리는 부부의 자리를 대표하는 자리였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아담 해와는 그런 입장에서 타락하는 아담 해와의 사랑보다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사랑 기준을 찾아서 그 사랑에 의해서 결속되었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되어 종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연결시키고, 그다음에 아담 해와의 횡적인 사랑이 하나되어 전체가 하나 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종적인 아버지가 횡적인 아버지로 출발해서 인류의 조상권을 이룰 수 있는 심정의 종합적인 기지가 마련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거기에서, 그러한 자리에서 '부활했다, 부활한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기준이 벌어지기 전에는 하나님이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겪는 이 세 고난의 절정을 해소시킬 수 있는 길이 없지 않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