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집: 선악과 흥망성쇠 1969년 06월 22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1 Search Speeches

예수님이 이 시대- 오"서 기도하신다면

본래 인간은 선의 목적지를 향할 수 있고 흥하는 세계에 갈 수 있었는데 잘못되었기 때문에 이런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시정해야 할 입장에 서있으므로 더 도덕적이고 더 천적인 내용을 중심삼고 가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이 세계는 비참과 멸망밖에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예수 같은 분은 이 땅에 와서 메시아로서, 만민의 구세주로서 사명을 하기 위하여 공적인 생활을 했습니다. 그가 바라는 소원은 무엇이었느냐? 예수는 땅위에 온 그날부터 세계적인 메시아가 되어 이스라엘 민족을 넘어 세계인류를 구원해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그 세계를 천운에 일치시켜 하나님 자체와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목적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런 관점에서 출발해야 했습니다.

예수님이 죽음길에서 십자가 도상을 바라보며 겟세마네 동산에서 결판적인 순간에 하던 그 최후의 기도는 무엇이었습니까? 예수님도 인간이기 때문에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내 뜻대로 하옵소서' 라고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속될 수 있는 인간성을 밟고 올라서서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라고 하여 내 뜻이 아닌 천운의 대의를 따랐던 것입니다.

‘내 뜻대로 하옵소서’는 내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라는 말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만일 예수님에게 가정이 있었다면 그 가정을 버리고 기도할 때 예수님은 `우리 가정의 뜻대로 마옵시고 하나님의 가정의 뜻을 위해 살 수 있는 가정이 되게 하소서' 라고 했을 것입니다.

또 예수가 오늘날 전세계 기독교를 거느리는 입장에 섰다면 무엇을 위해 기도하겠습니까? `우리 감리교를 위해서, 우리 장로교를 위해서, 우리 천주교를 위해서...' 이런 시시한 기도를 하겠습니까? 예수님이 이 시대에 살아서 세계를 걸고 기도한다 할 때 열두 제자에게 복을 주십사고 기도하겠어요?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 열두 제자를 세운 것을 세계를 위한 것이니 열두 제자를 세계를 위한 뜻 선상에 세워 주옵소서. 이스라엘 민족을 4천년 동안 준비한 것은 나 하나 보내시어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함이니 그러기 위해서는 세계를 위해서 그들이 공헌할 수 있는 길을 걸어야 되겠습니다. 하오니 열두 제자가 민족을 대신해 싸우면서라도 죽음길을 걸어야겠습니다'라고 기할 것입니다. 그래야만 세계적인 메시아요, 구세주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기도도 못 했습니다. 최후로 기도한 것이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입니다. 이 얼마나 비참한 일입니까? 여러분도 여러분의 뜻보다 우리 교회의 뜻을 중심삼은 기도를 해야 합니다. 내 뜻과 일치된 하나님의 뜻을 위해 기도하지 못한 예수님이 얼마나 원통했을 것인지 여러분이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까? 하나님께서 4천년동안 준비하여 선민 이스라엘을 세웠을 때 그 민족은 국가를 만들어 가지고 세계의 중심국가로 서야 했습니다. 세계의 중심국가는 세계의 모든 국가를 무력으로 굴복시켜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국가들을 자연 굴복시켜서 세계의 중심국가가 되어야 합니다. 칼과 힘을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월남전을 보더라도 미국은 월남에 비해 수십 배 이상의 국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떠한 일을 실행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을 보아도 미국의 몇백분의 일밖에 되지 않는 월남인 것입니다. 그런 월남의 힘으로는 자국을 지키지 못합니다. 또한 월맹도 그렇습니다. 미국이 하루에 1억달러 가까운 돈을 쓰며 전쟁을 하고 있으니 경제력이나 정치력, 또 군사력을 가지고는 맞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월맹이 그 사실을 알고 좌절하여 후퇴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