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7집: 가야 할 천국 기지 1992년 02월 11일, 한국 한남동 공관 Page #158 Search Speeches

선생님의 생애 철학

처음 선생님을 본 사람들은 선생님의 교육 방법을 잘 모를 거예요. 3분의 1은 몰라요. 손을 들어 맹세하자구요. 이 중에는 나는 절대 손을 안 들겠다고 결심한 사람도 있을 거예요. (웃음) 모두 드니까 처음에는 이렇게, 두번째에는 이렇게 하고…. 습관으로 든 거예요.

이놈의 자식들, 젊어서 얼굴이 반짝반짝 빛나니까 기분 나쁘구만. (웃음) 그 대신 심신 결의의 불꽃이 더 높이 빛나야 되는 거예요. 내심(內心)의 불꽃이 가라앉고 외신(外身)의 불꽃이 빛나는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 바로 이 시간에 그 반대가 되기를 선생님은 원해요. 알겠어요? 「예, 알겠습니다.」 `예' 라는 말도 선생님이 참 많이 들었어요. (웃음) `예' 하고 결심했으면 한번 해 보라구요.

선생님이 삼팔선을 넘을 때, 두손을 모아 삼팔선의 흙을 담고 `반드시 이 손으로 공산당을 소화하고, 몇년 후에 돌아오겠다.'고 결의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40년 만에 돌아온 거예요. 그것이 그냥은 안 돼요. 그렇게 되도록 환경을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일본이 만들어 주지 않았어요. 한국이 만들어 주지 않았어요. 모두 원수예요, 원수. 중국도, 러시아도, 미국도, 모두가 반대한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반대하는 환경을 소화해 가지고, 반대받지 않도록 끌고 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든 거예요. 그러니까 그와 같은 행동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결사적이어야 된다구요. 먹는 것을 잊고, 자는 것을 잊고 한 거예요. 돈이 있으면 거기에다 쓰는 거예요. 자기를 위해서는 한푼도 안 쓰고 말이에요.

선생님은 거리에 나가도 식당에 안 가요. 간부들을 데리고 가지 않는 한 안 간다구요. 요전에 간부들을 30명 정도 데리고 `페어 하우스'라는 곳에 갔었는데, 거기서 36만 엔을 지불했어요. 36만 엔이면 여기에서 그 이상으로 맛있게 만들 수 있는데…. 선생님이 요리도 잘 한다구요. `이렇게 이렇게 만들어라.' 하면 맛이 있다구요. 그래서 선생님이 `그 돈이면 이 이상 맛있는 것도 만들어 먹을 수 있는데, 쯧쯧….' 이렇게 혼자서 투덜투덜하니 어머니에게 당한 거예요, 무슨 남자가 그러냐고. (웃음)

여러분들도 한푼이라도 절약해서, 거리에서 떨면서라도 탕감복귀해야됩니다. 빚을 져 가면서 뛰어다니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아야 돼요. 비가 내리면, 처마 밑에서 그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면서 걱정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 명령을 선생님이 했습니다. 공산당은 천방지축으로 나가니까 천벌을 받는 거예요. 선생님은 빚을 지지 않습니다. 그것이 선생님의 생애 철학입니다.

자, 오늘도 이렇게 넥타이를 하고 와이셔츠를 입고 나왔지만…. 이것은 나일론이니까 얼마 안 한다구요. 이렇게 사는 거예요. 이거 얼마인지 알아요? 요전에 13달러를 주고 샀다구요, 바지는 7달러이고. (웃음) 20달러만 있으면 돼요. 이 벨트도 보라구요. 이게 값은 싸도 악어 가죽 벨트보다 더 튼튼해요. 설마 선생님이 이렇게 싼 것을 입고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했지요? 이런 것까지 말하면 뭐하지만, 선생님의 생활 내면을 알고 싶어하니까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런 소박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자신에 대해서는 구두쇠, 노랭이라구요.

선생님이 10만 엔을 쓰는 것은 여러분들 1천만 엔, 1억 엔 이상 쓰는 것보다 귀중한 것이라는 걸 알아야 됩니다. 오늘도 120명이 왔는데, 쇼핑할 돈을 주려고 했더니 한푼도 없어요. 한푼도 없으니까 할 수 없어요.

어때요, 쇼핑 갈까요? (웃음) 부모 자식 관계는 그렇잖아요?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 한국의 이태원에 가면 싼 것이 많아요. 그걸 일본에 가지고 가면, 9배 이상의 가격으로 팔 수 있으니까, 생활 면에서 보충할 수도 있어요. (웃음) 선생님은 상업에 대한 연구도 하고 있습니다. 왔다 갔다 하면서 판매도 하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