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집: 수욕의 상처 1969년 12월 07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51 Search Speeches

인류가 가야 할 생명의 '심지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그런 수치의 자리를 피하려고 하셨다면 오늘날 인류는 어떻게 되었을 것이냐?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수치스러움을 잊어버리고 또 잊어버리고, 주위에서 반박하는 원수의 아우성을 들을 적마다 `앞으로 나타날 아들딸은 옛날의 아담 해와와는 다르다. 내가 찾아나서는 아들딸은 옛날에 타락한 아들딸과 다르다. 죄악으로 출발한 그런 인간들과는 다르다. 기필코 다르다'라고 하시며 소망을 품고 그런 아들딸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런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지금까지 역사를 이끌고 섭리해 나오시는 것입니다. 원수가 조롱할 수 있는 동기와 기원을 마련한 인간이 아닌 그 이상의 인간을 찾으시며, 원수가 제시한 사랑이나 참이나 선이 아닌 그 이상의 것을 지닌 인간을 소망하시고 찾아 나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러한 소망이 없었더라면 지금까지 역사노정을 거치면서 복귀섭리라고 하는 대업을 해 나오실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그런 마음을 가지고 나오신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중심사상으로 삼고, 그 소망이 실현될 역사적인 시대를 바라보고 지금까지 나오신 거예요. 그래야만 그 이상의 아들딸을 찾을 수 있을 것 아닙니까? 또 그러한 아들딸을 찾지 않고는 수욕의 상처를 메울 길이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오늘날 하나님을 부르는 우리들, 즉 신앙자들의 태도가 어떠해야 할 것이냐? 하나님 앞에 수욕의 상처를 남긴 아담 해와의 입장을 넘어서 가겠다고 천배 만배 다짐하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이 인간을 믿을 수 없었던 억울한 사연을 전부 다 탕감복귀시키고도 남음이 있을 자리에 서야 합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한계선이 어디일 것인가? 하나님이 영원히 믿지 않을 수 없는 믿음의 아들딸, 원수가 참소할래야 참소할 수 없는 거룩한 아들딸의 모습을 찾으시는 그 한계선이 어디일 것인가? 아담 해와보다 십배 나은 자리일 것이냐? 백배 나은 자리일 것이냐? 천배쯤 나은 자리일 것이냐? 천 배든 만 배든 몇억만 배든, 어떻게든 그 기준을 넘어서 하나님의 상처를 완전히 메웠다 할 수 있는 자리까지 가야 합니다.

이런 것을 생각해 볼 때에, 오늘날 우리들의 입장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죄송한 입장입니까? 우리 인간의 과거지사를 생각해 보면, 생활 속에서 하늘 앞에 지은 많은 죄들을 생각하면, 현재 하나님이 나를 몰라 주고, 나를 위로해 주지 않는다고 불평할 수 있는 입장이 못 된다는 것입니다. 내 일대를 놓고 보더라도 일대에 맺힌 한을 하나님이 탕감해 주신다면 내게는 아무것도 안 남을 것입니다. 이 민족이면 민족, 세계면 세계가 한꺼번에 폭파되어 멸망을 당한다 하더라도 반박할 생각조차도 하지 못할 입장에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가운데에서 승리한 아들딸을 찾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수욕의 역사를 밟고 넘어서 역사적인 모든 존재들이 어떠한 참소의 조건도 내세울 수 없는 참의 모습, 효의 모습, 충의 모습을 갖춘 아들딸이 어디 있느냐? 그런 아들딸은 하늘만이 찾는 것이 아니라, 인류도 찾아야 됩니다. 그러한 아들딸이 있는 자리가 인류가 가야 할 생명의 중심지인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를 찾아가야만 우리에게 행복이 올 것이며, 그 자리를 찾아가야만 우리에게 희망의 세계가 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