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집: 탕감이 가는 길 1967년 06월 04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59 Search Speeches

끝까지 참고 견""면

노아 할아버지는 핍박이 심하고 어지러운 환경 속에서도 혼신의 힘을 다했기 때문에 그 환경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법도 앞에 자식으로서 충효의 도리를 다할 뿐이라는 겸손한 마음을 갖고 나갔던 것입니다. 하나님 앞으로 나가면 나갈수록 환경의 비정함을 느끼고, 서러움을 당했으나 그런 때일수록 노아 할아버지는 하나님께 죄송한 마음으로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갔기에 그가 가는 길을 막을 자가 없었던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그렇게 해서 120년 동안을 지내 온 노아를 한번 생각해 보세요. 노아 한 사람을 놓고 사탄세계는 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 보았고 반대할 수 있는 대로 반대했지만, 하나님이 중심으로 세운 그 기준에서 노아는 추호도 어긋남이 없었습니다. 그 기준은 천주의 절대적인 중심으로 세운 것이요, 우주의 정의의 인간으로 세운 것이요, 참의 승리자로 세운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기준에 반대되는 모든 원수의 요소들을 청산하려 하셨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끝까지 맞고 나면 멋진 일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맞았습니까?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 깜박깜박하는 눈들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내 마음이 답답해진다구.

아브라함도 노아와 마찬가지입니다. 우상 장수의 아들 아브라함은 사탄이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똑똑하고 사랑스런 그 아들을 빼앗아 온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소망하던 세계는 그 아버지의 생각과는 달랐습니다. 원수의 아들이긴 했지만 생각하는 것이 그 아버지와는 달랐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기의 가정만을 위하는 것이 아니고 미래의 이스라엘을 염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빼앗아 왔으니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자라날 때는 그의 환경과 친척이 내편인 줄 알았는데, 그 모든 것이 원수가 되어 버렸습니다. 더우기 자기 나라와 종족을 이탈하고 자기 부모를 반대하고 나선 아브라함이 갈 수 있는 집이 어디 있으며, 친척이 어디 있으며, 나라와 세계가 어디에 있겠냐는 말입니다. 그야말로 혼자 남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가는 곳곳마다 시련과 고통을 겪게 되었던 것입니다. 애급에 갔을 때는 바로 왕이 그의 부인을 빼앗으려고 했고, 어디를 가든지 몰림받는 집시의 신세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처럼 몰림받는 행로에서도 아브라함은 자기 부모와 친척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잘 사는 것보다 이스라엘 민족이 자신을 부르고 있고, 승리가 자신을 부르고 있고, 행복의 터전이 자신을 찾고 있다는 것을 더 절실히 느꼈기 때문에, 집시의 행로에서도 밤하늘의 별을 보며 오직 하나님 앞에 바랐던 것은 소망의 천국으로 가게 해 달라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해주셨던 것입니다. 그의 앞에 닥쳤던 쓰라린 고통과 어려운 환경은 다른 사람이라면 자신을 불러낸 하나님을 배반하고 자기 입장을 탄식했을 것이나 아브라함은 그런 입장에서도 하나님과 더욱 깊은 인연을 맺을 수 있는 심정으로 하나님을 모셔 나왔기 때문에 그의 앞길에는 행복의 문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이때는 자기 민족으로부터 시련을 받는 기간이 아닙니다. 종족으로부터 시련을 받는 기간이 아닙니다. 민족적인 시련을 받아야 할 시대를 넘어서서 다른 민족이 치는 시대라는 것입니다. 노아 시대까지는 자기 친족 자기 종족이 쳤지만 아브라함 시대에 와서는 이방 민족들에까지 넘어간 것입니다. 복귀역사는 그렇게 해서 점점 더 그 영역을 넓혀 나가는 것입니다. 3개 이상의 이방 민족에게 몰림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의 후손인 모세 때 와서는 민족적인 탕감을 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때부터는 이스라엘 민족을 걸어 놓고 종족적인 탕감과 민족적인 탕감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가 가는 길에 수많은 민족이 반기를 들고 참소를 하며 가는 길을 막았던 것입니다. 만일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가 인도해 가는 길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그에게 협조했더라면 그들이 광명한 천지를 맞이했을 것인데, 불평 불만을 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원수를 치기 전에 이스라엘 민족을 먼저 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결국 모세 일파는 광야에서 독수리 밥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재차 그들에게 다가온 민족적인 시련을 달갑게 맞이하면서, 가나안 7족이 던지는 원수의 창끝도 감사히 받으면서 하늘 뜻과 더불어 생사를 같이하겠다고 나선 그 걸음 앞에는 승리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민족적인 탕감을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간단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